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망 Feb 17. 2023

직장상사 뒷담화

뜯고 씹고 즐기는 맛


우리 부서에는 나를 포함해 여자만 다섯이 있다.


그중 한 사람만 파트타이머로 사무실을 따로 쓰고 남은 풀타임 직원 네 명이 한 사무실을 같이 쓴다.

나는 남자가 대부분이던 이전 직장에서 조금 지쳐, 재작년 말 이곳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나름 기대가 컸다. 여자들끼리 일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하루종일 좁은 사무실에 갇혀 그녀들의 수다를 듣다 보면 퇴근할 때쯤에는 기가 다 빠져 머리는 멍하고 몸은 축축 늘어진다. 그중 두 사람이 특히 말이 많은데 그 둘은 친구 사이다. 한 명이 먼저 들어왔고 한 달쯤 후 또 공석이 생기면서 친구를 추천했다.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좋은 동료들이지만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면 당최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당연히 직장상사의 뒷담화.


그는 싱가포르 출신의 50대 남자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불구하고 찐 꼰대다. 자기 스케줄 바꾸는 일에 부르르 떨고 자기가 우리 봉급을 준다고 생각하며 자기 맘에 안 들면 우리를 자르는 건 일도 아니라는 의도를 듬뿍 담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실상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대학에서 나랏돈(우리가 낸 피 같은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진짜 심각한 사고를 내지 않는 한 해고를 당할 일이 없다. 특히 매니저가 직원을 그냥 자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사과와 근로 계약법을 담당하는 변호사, 노동조합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막말은 계속된다. 혹여 그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미팅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배웠다. 조용히 있는 법을.


지난주 미팅에서 그가 차로 2시간 반 정도 떨어진 도시에서 워크숍을 할 예정이라며 항공편이 마땅치 않으니 너희 중 하나가 우리를 태우고 운전해서 가야겠다, 라고 언질을 줬다. 그리고 며칠 후 직장 단톡방에 지원자 손들라고 하니 말 많은 동료 하나가 바로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니 대번에 그 일을 하소연한다.


매번 그런 식이다. 자기가 자원해 놓고 말이 참 많다. 그래서 내가 혼자 왕복하기는 어려우니 너랑 나랑 나눠서 하자고 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매니저는 항상 "I don't drive."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운전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아느냐고. 그녀는 못하는 거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What a loser!"라는 말을 내뱉고 나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남친도 면허가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급히 너네 남친은 시내에 사니까 운전할 필요가 없지만 매니저는 외곽에 살잖느냐며 수습하는데 등골이 서늘했다.


다른 말 많은 동료가 덧붙인다. 싱가포르에선 차가 필요 없다고. 차를 소유하는 데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아무나 차를 사지도 못한다고. 차량 취득권인가 뭔가가 1억 원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차 없이 살기가 너무 어려운 나라다. 대중교통이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고 그마저도 외곽으로 나가면 문제가 더 커진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한 명당 차 한 대씩을 갖고 있어서 우리 동네만 해도 한 집에 차가 두세 대씩 세워져 있는 게 다반사다(우리 집만 한 대인 듯).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우리 매니저가 얼마나 고집스러운 인간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고집이 있었기에 지금 자리까지 올라갔겠구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 같은 일개 직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뉴질랜드에서 이렇게까지 날 세우며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쓰다 보니 직장상사와 동료의 뒷담화가 되어 버렸다.


직장상사는 남들 뒷담화를 하고 우리는 그의 뒷담화를 하고 나는 내 동료들의 뒷담화를 하는 이 끊임없는 쳇바퀴가 참 씁쓸하다.


작가의 이전글 싸이클론 가브리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