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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Feb 26. 2023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헤매기

발에서 불난다 불나


싱가포르 자유 시간 첫째 날, 동물원이다!


동물원은 내 최애 관광지로 어느 도시를 가든 웬만하면 일정에 넣는 장소다. 소문으로 들은 바, 싱가포르 동물원은 동물친화적으로 조성되어 있어 동물들이 꽤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한다.


시내에서 꽤 거리가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한 시간 반, 택시를 타면 30분이라고 하는데 혼자 택시를 타자니 낭비인 것 같아 지하철을 타고 가다 버스로 갈아타기로 했다. 여덟 시 반에 개장한다고 하길래 일곱 시 반에 출발하면 여덟 시 반 좀 넘어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글맵이 그랬다.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필요한 것들을 가방에 챙겨 나가려니 자꾸 잊은 게 생각난다. 호텔방을 나갔다 들어갔다 하며 물병도 챙기고 파워뱅크도 챙기고 혹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우산도 챙기고 이것저것 다 쑤셔 넣으니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 나가려니 벌써 지친다.


겨우 나온 시간이 이미 여덟 시를 넘겼다. 지하철을 찾아간다. 그래도 몇 번 가본 길이라고 실수 없이 갔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잘못 타 다른 노선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내려가서 맞는 노선으로 갔지만 어느 쪽으로 타야 할지 모르겠다. 한 대를 놓쳤다. 다음 차를 탔다. 먼 길을 가야 하니 심심하니까 오디오북이나 듣자 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고 한참을 가다가 이제 지도를 한 번 확인해야 할 것 같아 구글맵을 켜보니 허걱, 역을 지나친 지 오래다. 멀리 간다고 너무 넋을 놓고 있었나 보다. 막막하다. 온 길을 다시 다 돌아가야 할까 아님 그냥 내려서 택시를 탈까. 다시 보니 한 정거장만 돌아가면 그 역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아침부터 생쑈를 하고 동물원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4분. 남들이 말하던 한 시간 반에서 거의 30분이나 더 걸렸지만 동물원은 정말 정말 볼만했다. 한국이나, 특히 뉴질랜드에선 볼 수 없는 동물도 많았고 진짜 동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내가 사는 웰링턴의 동물원도 동물 살기 좋기로 유명하지만, 그래서인지 동물들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갈 때마다 실망하고 돌아오곤 하는데 싱가포르 동물원의 동물들은 대부분 잘 보이는 곳에 나와 있었다. 못 본 동물은 반달 가슴곰뿐인 것 같다.


빅토리아 왕관 쓴 비둘기(엄청 우아함)


보고 가장 신기했던 동물 중 하나는 박쥐. 과일을 먹는 박쥐로 호주에도 꽤 많이 서식한다. 호주 애들레이드에 갔을 때 박쥐들이 대낮에 키가 큰 나무 위에 새까맣게 매달려 있기도 하고 날아다니기도 해서 그 진기한 광경에 놀랐었는데 싱가포르 동물원에서는 아예 사람들 가까이에 과일을 매달아 놓아서 바로 앞에서 과일 먹는 박쥐를 볼 수 있었다.


냠냠 마시쪄


이 박쥐들은 생태계를 살리는 동물 중 하나라고 한다. 꽃가루와 씨를 옮겨 과일들이 자라게 돕고, 그 과일들 중 하나가 두리안이라고 한다. 물론 여전히 여러 질병을 옮기는 게 박쥐이긴 해도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귀엽다.


Sloth in action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건 처음 본 듯)


점심은 KFC에서 해결했다. 여행을 가면 그곳 음식을 주로 먹긴 하는데 동물원 안 식당들 평이 별로 좋지 않아 그냥 아는 맛을 먹기로 했다. 항상 그렇듯 먹고 나서 속이 느글느글해졌지만.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혼자 신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인지 신기한 동물은 이미 다 봐서인지 기운이 빠졌다. 발에선 불이나고 모기인지 뭔지가 여기저기 팔다리를 물기 시작했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뉴질랜드에 이민 온 한국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서는 없던 알레르기가 생긴 사람이 꽤 있다. 나도 그중에 하나로 모기에 물리면 그 붓기가 아기 주먹만 해질 때가 있어서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


그래도 동물원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무료 운행하는 트램을 타고 한 바퀴 돌고 나니 세 시가 넘었다. 모기에게 더 물리기 전에 나가려고 부지런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엔 한 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다.


싱가포르 동물원 옆에서 세계의 강을 테마로 한 리버 원더스(수족관과 다른 수상 동물들을 주로 본다)와 나이트 사파리(세계 첫 나이트 사파리라고 한다)도 함께 있어서 같은 날 두세 곳을 함께 보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나는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보자는 마음으로 동물원만 선택했지만 나이트 사파리를 못 본 게 조금 아쉽다.


발에서는 불이 나고 너무 더워서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것 같지만, 동물도 많이 보고 많이 걷고 보람 있는 하루였다. 비는 안 왔고 날씨는 짱짱했다.


혹시 싱가포르 대공원에 간다면 모기 방지 패치를 꼭 챙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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