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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r 05. 2023

칭찬을 갈구하는 남자

바로 내 남편


아침에 일어나 주방으로 가니 갓 구운 빵 한 덩어리가 놓여있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 때 남편이 너 아침에 먹을 빵 준비해 놨어, 라며 한 마디 했던 게 기억났다. 아침을 토스트 두 조각과 오트 밀크를 넣은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나는 빵이 떨어지면 난감하다. 보통 남편은 시리얼을 먹기 때문에 먹을 빵이 없다면 시리얼을 먹어도 되지만 아침에 찬 우유를 먹는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다.


우리 집엔 브레드 메이커가 있다. 주로 남편이 사용한다. 사용방법은 아주 간단해서 브레드 메이커에 딸려 온 사용 설명서에 따라 재료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섞고 뭉치고 발효시켜 구워주기까지 한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빵이 구워지고 나면 바로 꺼내야 한다는 거다. 바로 꺼내지 않으면 아직 뜨거운 틀 안에서 과하게 구워진다.


어젯밤 잠자리에 준비해놓았다고 한 빵이 이미 틀 밖으로 나와 있는 걸 보면 남편이 언제 주방으로 나와서 꺼내놓은 게 틀림없다. 내 추리는 여기까지. 우선 아침으로 먹을 빵을 썬다. 빵이 아직 따뜻하다. 갓 꺼낸 빵은 제대로 잘라지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 이 빵은 잘라지긴 한다. 아직 온기가 있긴 해도.


아침을 먹으며 아이패드로 티브이를 보며 여유를 즐기는데 그제야 남편이 일어나 나온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새벽 6시로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서 빵을 꺼냈단다. 내가 아침을 먹을 때쯤엔 잘 잘라지게 하려고.


고맙다, 아주 고맙다. 근데 꼭 그렇게 생색을 내야겠니. 나도 이미 그 정도는 예상했거든요.


남편은 나보다 착하다. 결혼할 때쯤엔 더 착했는데 지금은 말대꾸도 하고 화도 낸다. 아무래도 나를 닮아가는 것 같다. 여자인 나보다 더 세심하고 살림꾼이다. 근데 한 가지, 칭찬에 너무 목숨을 건다.


나는 무뚝뚝한 집안에서 무뚝뚝하게 자라서 그런지 고맙다, 미안하다,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안 나오는 사람인데 남편은 그런 말들을 너무 잘한다. 미안하다는 말도 너무 잘해서 처음에는 빈 말같이 들렸다.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툭 치면 나오는 느낌이랄까.


내가 그런 사람이라 그런지 남편은 뭘 하면 뭘 했다고 항상 보고를 한다. 그리고 다음 말을 기다린다. 아, 진짜 피곤한 이 남자.


덕분에 고맙다, 미안하다, 말할 수 있는 능력치가 조금 올랐다. 가끔 한 박자 놓쳤다가 '어, 그래, 고마워' 정도의 말이 나올지언정 그래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싸우고 절대 먼저 미안하다고 안 하던 습관도 조금 바뀌었다. 'I am sorry, but...'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나올 때가 대부분이긴 해도.


내가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물건을 사 와서는 '너 생각해서 사 왔어' 할 때는 아직도 고맙다는 말이 쉽사리 안 나온다. '왜 너는 학습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누르며 '고마운데, 필요 없으니 환불하러 가자'라는 말로 달래 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더라만 난 아직 피라미도 춤추게 할 능력이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상황, 남편이 들어와 '방금 배달 온 장거리를 정리했고 어제 사 온 꽃나무를 심었다'라고 보고한다. Thank you를 두 번 연발했다. 됐다! 꽤 자연스러웠어.


아, 근데 진짜 피곤하다!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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