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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r 04. 2023

마른 비만인의 비애

근육만 늘리면 돼요.


나는 평생 저체중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얼마나 뭘 안 먹는 까다로운 아이였는지 지금도 혀를 내두른다.


나는 안 먹는 게 참 많았다. 가끔 사 먹는 떡볶이, 불량식품, 아이스크림 같은 건 좋아했지만 살려면 보충해야 하는 에너지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항상 잘 안 먹는 아이였기 때문에 거기에 얽힌 일화 같은 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기억나는 게 있다면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나를 따라다니며 한 입만 먹어달라고 애원하던, 아마도 매일이 전쟁이었을 하루하루.


남들 다 살찌는 고등학생 때 나도 살이 쪘다. 세 번은 접어 입던 교복 치마를 고3 때는 훅을 풀어놓고 다녔다. 그래도 표준 체중이 될락 말락 했다. 대학 들어가면 저절로 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나한테도 통했다. 수능 끝나자마자 싸돌아다녔더니 대학 입학할 즈음엔 다 빠졌더라.


이때부터 내 식습관이 많이 변했다. 먹지 않던 음식들을 먹게 되고 맛이 있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도 많이 먹지도 빨리 먹지도 않았다.


예전부터 걷는 걸 좋아해서 여기저기 많이 걸어 다녔다. 방송 댄스를 했다. 몸이 너무 막대기라 포기했다. 요가도 했다. 요가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요가 마치는 시간에 누워서 가만히 명상하는 시간이 더 좋았다. 잠이 솔솔 왔다.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사람도 없었고 머물 곳도 없었고 참 서러웠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생겼다. 거의가 한국인, 중국인, 그리고 몇몇 스리랑카인들이었다. 한국 친구들은 다들 돈을 아끼느라 먹을 기회가 있으면 미친 듯이 먹었다. 특히 한국음식은 '오늘만 날이다'를 외치며 죽어도 먹고 죽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며 욱여넣었다.


난 원래 살이 안 찌는 체질인지 알았는데 역시 그런 건 없었다. 그래도 표준 체중 정도였을 거다. 8개월 과정을 마치고 다녀와서 직장을 알아볼 계획으로 한국에 한 달 휴가를 갔다. 엄마가 나를 보더니 기암 하며 핫요가원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끊어줬다. 최소 40분은 걸어가야 하는 요가원까지 매일 걸어가 땀을 줄줄 흘리며 요가를 하고 다시 집까지 걸어왔다. 내 평생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생애 최초로 내 복근도 확인했다.


하지만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오고 일상은 똑같아졌다. 대신 식탐은 조금 줄었다.


먹는 걸 적게 먹는 건 아니다. 키 183cm에 몸무게는 100kg에 육박하는 남편과 비슷하게 먹는다. 그 대신 천천히 먹고 폭식은 하지 않는 편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간식도 많이 먹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도 마른 비만이라는 점이다. 며칠 전 남편과 퇴근길에 '근육 운동 해야 하는데' 했더니 십 년 넘게 말만 한다며 당장 덤벨 세트를 사준다고 야단이다. 그냥 하는 말이거덩.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애들 산책시키고 하면 내가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 핑계다. 그리고 나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이제 나이 들어 살이 흐물흐물 해지는데 몸짱 아줌마는 못 돼도 뼈 안 부러지게 근육은 조금 있어야 하니까. 대책을 강구하자. 근육만 늘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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