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로 이야기
우리 집에는 개가 두 마리 있다. 나는 항상 '우리 강아지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성견, 아니 노견에 가까운 아이들이다. '개'라는 말이 워낙 안 좋은 말로 많이 쓰여 '강아지'라는 말로 대신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마일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마일로는 2013년 12월 생이다. 올 말이면 열 살이 된다.
마일로는 보더콜리다. 스코틀랜드에서 양을 치기에 적합하도록 만든 종. 보더콜리하면 개를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개를 떠올릴 것이다. 추운 스코틀랜드의 날씨를 견디기 위해 털도 두 겹이다. 보온을 위한 솜털과 물이 잘 마르는 반지르르한 겉털.
우리가 마일로를 입양했을 때 우리는 이미 '모모'라는 2살 남짓의 고양이 한 마리, '진자'라는 1살 남짓의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해보겠다.
우리는 '트레이드 미'라는 중고 쇼핑 사이트에서 보더콜리를 검색했다. '트레이드 미'는 없는 게 없는 뉴질랜드 최대 쇼핑 사이트다. 중고 쇼핑 사이트라고 썼지만 꼭 중고 물품만 파는 것은 아니고 새 물건, 자동차, 집, 반려동물, 수많은 거래가 오가는 사이트다.
마일로는 웰링턴에서 두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마튼(Marton)'이라는 시골 동네 태생이다. 엄마는 짧은 적갈색 털의 보더 콜리, 아빠는 금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밝은 아이보리에 가까운 베이지색, 긴 털을 가진 보더콜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털의 길이만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흰색, 검정 색이 섞인 보통 보더콜리였다.
마일로는 털이 길었고 귀가 접혀 있어서 착해 보였다. 보더콜리를 키우는 게 꿈이라던 남편이 골랐다. 이런 결정을 해야 할 때면 언제나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이 한 번의 선택으로 개의 인생뿐 아니라 우리 인생도 변하게 되니까.
원래는 가서 꼭 한 마리 데려와야지,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냥 한 번 보러 갈까, 하고 나섰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그 먼 데까지 가는 데 아무래도 데려올 것 같다, 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마일로를 케이지에 넣어 차 뒤쪽에 싣고 돌아오는데 마일로가 하도 낑낑 울어대, 곧 차를 세우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 무릎에 앉혀 집으로 돌아왔다.
마일로는 아직 두 달도 안 된 아기였지만 시골에서 자라서 밖에서 먹고 잤던 것 같다. 좋은 사료를 먹였을 리도 없었다. 집으로 데려와 구충을 했는데 다음 날 하얀 국수가락 같은 회충을 토해냈다.
마일로는 혼자 있는 게 편한 듯했다. '진자'처럼 우리에게 치대지 않았고 혼자 주방 구석에 작은 몸을 누이곤 했다. 우리는 마일로를 '안티 소셜'이라고 불렀다.
마일로가 똑똑하다고 느낀 건 우리가 마일로를 데려오고 며칠간 함께 적응 시간을 가진 후 출근한 첫날이었다. 진자도 한 살 반도 안 된 나이였기에 우리는 매일 진자를 널찍한 주방에 놔두고 기다란 철제 울타리 같은 것으로 막아놓고 외출하곤 했다. 그날도 똑같이 해놓고 출근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창문에서 마일로와 진자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철제 울타리는 허술했다. 앞뒤로 쉽게 움직이는 경첩이 두 군데나 있어 살짝 밀면 접혀서 끝 쪽에 공간이 생겼다. 진자는 일 년이 넘도록 몰랐던 것을 마일로는 하루 만에 깨닫고 탈옥을 감행한 것이었다. 같은 개인데 이렇게 다르구나, 처음으로 생각했다.
두 번째로 마일로가 똑똑하다고 느낀 날은 정원에 앉아 우연히 옆에 나뭇가지를 던졌더니 가서 물고 온 날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고 와서 또 던져줘 보니 또 물고 왔다. 그렇게 놀이는 시작되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세상 똑똑한 개도 똑똑하지 않을 때가 있다. 다리 뒤 쪽이 찢어져 피가 나는데도 공놀이에 정신이 팔려 모른다거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 강가를 발이 다 까지도록 뛰어다닌다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정신이 쏙 빠져 어쩔 줄 모른다거나, 갖고 놀던 공이 산 밑으로 떨어지면 깎아지른 절벽에서도 생각 없이 뛰어내리려고 한다거나.
이제는 다리가 예전 같지 않아 어디선가 집어 온 막대기를 안 던져주면,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내려놓고 간절한 얼굴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역시 똑똑하다 싶으면서도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보더콜리의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는 노견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침에 목줄을 들 때 이미 문 앞에 앉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아기 같다.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쭉 신나게 뛰어놀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