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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r 23. 2023

아빠의 엄마가 되어버린 우리 엄마

아니야, 내 엄마라고!

나는 아빠가 싫었다. 사춘기 때는 아빠가 말 거는 것도 싫었고 어쩌다가 손이라도 닿을라치면 흠칫 손을 거두곤 했다. 오빠가 먹은 과자봉지를 나에게 치우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부린 적도 있었다.


아빠는 우리에게 '돈 벌어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가 아플 때 이마를 짚어주던 사람도 엄마였고 성적을 잘 받거나 상장을 받아오면 잘했다고 등 두드려 주는 사람도 엄마, 잘못했을 때 혼낸 사람도 엄마였다. 아빠는 없었다. 명절에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에 가느라 입석 기차에 타서 엄마가 우리 손을 양손에 꼭 잡고 있을 때도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대공원에 갈 때도 학교 입학식, 졸업식 때도 아빠는 없었다.


아빠는 가끔 술을 마시고 와서 엄마랑 싸우고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우리도 같이 울었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서럽게. 그러면 엄마는 우리를 끌어안고 또 울었다.


엄마는 아빠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 사랑을 주지 못한다고,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른다 했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고 내 이름 한 번 불러준 적이 없었다. 언젠가 할머니가 내 이름을 알긴 할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고 난 할머니가 내 이름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죽어도 알 수 없을 거다.




아빠는 평생 일 밖에 몰랐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아빠가 15살 때 홀로 서울에 상경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다 기술을 배워 공업사를 차렸다. 엄마도 아빠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에는 치를 떨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를 그 시절 이야기를 죽기보다 하기 싫어했고, 아빠는 그 시절 이야기를 밥 먹듯 했다는 거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는 아빠를 싫어했다.


아빠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집에 잠시 머물던 할머니가 자기 짐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하게 하던 병, 요양 병원에서 감당이 안 된다며 할머니의 팔과 다리를 묶어놓게 한 병, 암에 걸렸던 우리 엄마가 암보다 지독하다고 하는 병이었다.


아빠는 아이가 되어간다. 괴팍하고 말 안 듣는 아이. 그래도 데이케어에 다니면서 조금 유순해졌다. 일요일만 빼고 매일 가는 그곳이 엄마의 숨통을 틔여주었다.


예민하던 엄마도 조금 변했다. 결벽증,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격인 엄마가 이제는 포기할 줄도 안다. 그렇게 들들 볶으면 자기만 괴롭다는 걸 아니까 자기가 편하려고 마음을 그렇게 먹기로 했다고. 물론 아빠는 알리가 없다.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 본인도 노인인데 치매 노인과 사는 우리 엄마. 멀리 있어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비행기 잡아타고 갈 수 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딸에게 엄마가 할 수 있는 한 괜찮다고, 너나 잘 살라고 하는 우리 엄마.


최근에 엄마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데이케어에 갔더니 아빠가 유치원에 데리러 온 엄마를 본 아이처럼 반기더라는 이야기, 데이케어에서 만든 것을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더라는 이야기. 어디 함께 나가면 아빠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엄마는 꼭 아빠의 엄마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엄마, 아빠는 항상 서로를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고 오빠의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오빠가 태어나기 전에는 서로를 무슨 호칭으로 불렀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누구 엄마'하고 부르다가 아니, 이제는 내 엄마가 됐네, 하며 허허 웃더란다. 우리도 함께 웃었다. 우리가 이미 한참 전부터 하던 말인데 아빠는 이제야 느꼈나 보다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웃고 넘겨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운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엄마랑 나는 항상 친구처럼 재잘재잘 속에 있는 것들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였다. 속상한 일도 엄마한테만은 막 떠들 수 있었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엄마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거기에 티끌 하나라도 더하면 엄마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라 아빠의 엄마가 되어간다.


나도 엄마 필요해, 하고 투정을 부리기엔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엄마가 없어도 되는 나이는 아니기에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서럽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미안하다.


내일 아침엔 오빠를 낳기 전 엄마, 아빠는 서로를 어떻게 불렀는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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