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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Apr 08. 2023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

돈도 잃고 친구도 잃은 스토리


아주 오래전 친구에게 큰돈을 빌려 준 적이 있다. 나도 변변한 돈벌이가 없을 때였다. 친구에게는 이미 여러 장의 신용카드로 끌어 쓴 빚이 있었고 친구가 어떻게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친구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나도 아직 어리고 철이 없을 때라 적당한 핑계를 찾을 수도 없었다. 친구는 나에게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돈을 빼서 자기에게 빌려 주면 자기가 청구일 전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적은 액수였지만 점점 불어나 결국에는 카드 여러 장으로 돌려 막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내 기억에 겨우 몇 달쯤. 돈을 빌려주고 친구에게 돈을 받아 카드값을 메꾸고 다른 카드에서 또 서비스를 받아 메꾸고 원금은 얼마였는지 이자는 얼마인지 그 경계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친구는 미안하다 했지만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빚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친구가 아무 연락도 없이 잠수를 탄 게. 당장 카드값이 나가야 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이렇게 될 때까지 말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빌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본인이 갚아주시겠노라 했다. 그 말을 믿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친구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친구 어머니는 나를 피하셨다. 막다른 길에 몰린 나는 할 수 없이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 엄마와 함께 친구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어디 단란주점으로 오라길래 불안한 마음에 이미 결혼해 따로 살던 오빠에게 같이 가달라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친구는

없었고 친구의 어머니는 자신의 여동생과 남동생과 함께였다. 친구의 삼촌은 금반지를 여러 개 낀 조폭이었고 나는 친구 어머니에게 갚아주신다고 하지 않으셨냐며 친구랑 같이 만나서 얘기를 좀 해보자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단란주점을 나오며 오빠는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다고 상대하지 말자고 했다. 엄마는 친구가 써준 차용증이 있으니 법무사를 만나보자 했고 법무사는 민사 소송을 하면 된다고 아주 쉽게 말했다. 모든 일을 법무사에게 일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법무사는 ‘카드를 빌려주었다’는 잘못된 내용으로 소송을 걸었고 이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친구 쪽에서는 형사소송을 걸었다.


내 이십 년 조금 넘는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현금 서비스를 받아 준 돈은 결국 증명이 어려워 친구와 내 통장에 왔다 갔다 한 돈만 따져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그때 이후 친구를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온 내 가장 친한 친구는 그 후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아서 오다가다 마주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그런 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피했던 친구는 그렇게 내 인생에서 영원히 퇴장했다.


처음 몇 년간은 친구가 생각나면 너무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도 화가 치밀었다. 엄마에게 미안했고 친구 어머니에게 눈물로 사과한 일이 억울했다. 그렇게 치를 떨던 몇 년이 지나자 슬퍼졌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까, 한 번씩 생각이 났다. 


그 이후 이십 년 세월이 흘렀다. 친구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일을 계기로 친구도 다른 삶을 살게 되었기를, 제발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안다. 가까운 친구일수록 돈거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있는 돈을 주며 못 받아도 좋다는 마음이 아닌 한 돈을 주고받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비싼 교훈을 얻었다. 남들이 말하는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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