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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Apr 10. 2023

서러웠던 긴긴밤


처음 뉴질랜드에 온 날은 춥고 비 오는 팔 월의 마지막 날이었다(뉴질랜드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한국 에이전시에서 마련해 준 기숙사 형태의 숙소에 우선 지내면서 다른 살 곳을 알아보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하니 말이 달라졌다. 그곳에서 6개월 계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엔 나와 같은 과정을 듣기로 되어 있던 다른 한국인도 몇몇 있었는데, 대부분 그냥 그곳에 남았다. 나는 우선 한국인이 하는 홈스테이에 들어갔다가 다른 곳을 알아봐 이동하기로 했다.


우울한 날이었다. 으슬으슬 춥고 비는 오고 갈 곳은 없고. 그래도 어디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으랴,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1년, 한국인 홈스테이 - 한국인 플랫 - 키위(뉴질랜드인) 홈스테이 - 키위 플랫 - 키위와 아파트 셰어, 다섯 군데 숙소를 전전했다. 마지막 숙소에서는 갑작스럽게 이사를 나와야 했다. 그때 같이 살던 키위 친구가 아파트를 렌트한 상태였는데 주인이 급히 집을 팔게 됐고 그 친구는 방 하나 짜리 스튜디오를 구한 다음이었다. 친구는 우선 자기가 이사 가는 곳으로 함께 가서 거실에서 지내며 다른 곳을 알아봐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거실에 따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급히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주당 렌트비였다. 다른 조건들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니며 친해진 내 한국인 친구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 싼 방이 하나 나와있었다. 당장 그 집을 보러 갔다. 방 세 개, 욕실 한 개짜리 아파트였는데 이미 있던 입주민은 50대 한국인 남자와, 20대 일본인 남자였다.


남자들만 사는 집이란 걸 한 눈에도 알 수 있었다. 주방에도 욕실에도 찌든 때가 껴있었고, 신발을 벗고 다니는 문화도 아니지만 신발을 벗고 다니기엔 바닥이 너무 찝찝했다. 내가 쓰게 될 방을 들여다보았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였지만 아파트 현관 바로 옆에 있던 그 방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한쪽 벽에 딱 붙여놓은 싱글 침대가 방 안을 거의 꽉 채우고 있었다. 침대 발치엔 작은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문이 열리는 공간을 피해 놓여 있었다. 침대를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골방 같은 방의 천장 근처에는 양 손바닥을 합친 것보다 조금 큰 창문이 아파트 복도 쪽으로 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다른 데를 알아봤을 테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고 그 방은 비어있었고 또 가격이 착해서 당장 그날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불 한 채 없었던 나에게 친구가 안 쓰는 극세사 이불이 있다며 빨래방에 가서 빨아서 준다고 했다. 빨래방에서 이불을 세탁하고 건조해서 내 방에 넣어두고 우리는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도 작았지만 그래도 안락하고 쾌적하고 따뜻했다. 이사 온 기념으로 저녁을 같이 먹고 밖이 깜깜해지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어두운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자 쾌쾌한 냄새와 찬 기운이 훅 밀려들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자 작은 창문으로 복도의 불빛이 빼꼼히 새어 들어왔다. 불을 켜고 친구가 준 보드라운 극세사 이불을 침대 위에 반 접은 상태로 올렸다. 이불이 하나뿐이라 깔고 덮어야 했다.


이불은 눅눅하고 차가웠다. 몸은 잔뜩 웅크려보았지만 찬 기운이 쉽사리 달아나지 않았다. 친구가 괜찮냐며 전화를 걸어왔을 때 울음이 터져 버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에게 이불이 다 안 마른 것 같다고 했다.


친구가 빨리 이불을 갖고 빨래방으로 오라고 했다. 빨래방에서 만난 우린 챙겨 온 동전을 넣고 다시 건조기를 돌렸다. 바깥은 깜깜했고 환하게 불이 켜진 빨래방 안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건조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윙윙 울려 퍼졌다. 이불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같이 눈물을 훔치다가 깔깔 웃다가 했던 기억이 난다.


밤늦게야 따뜻하고 보드라운 극세사 이불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노란색에 주황색이 조금 섞인 그 이불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건조기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빨래방 안 벤치에서 두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 울고 웃던 우리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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