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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Jan 18. 2023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는 방법


식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본 적도 딱 한 번뿐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그 집에는 마당이 있었지만 시멘트가 깔린 바닥에 수돗가가 덩그러니 있는 꽤나 삭막한 모습이었다. 그마저도 새로 집을 지으면서 사라졌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정원'은 귀찮고 성가시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잔디는 조금만 방치해도 수풀을 이루고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고, 크고 작은 날벌레와 땅벌레, 달팽이, 지렁이 등 맨 손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 아무 데서나 불쑥불쑥 나타났다. 대벌레(stick insect)라는 것도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봤다. 작은 나뭇가지인 줄 알고 손을 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이제는 달라졌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을 좋아하게 되면서였는지, 동식물을 많이 접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안 보이던 것들이 차차 보이기 시작하더니 눈길이 머물고 신경이 쓰였다.


남편이 즐겨보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봤다며 해 준 이야기가 있다. 


식물을 땅에 옮겨 심을 때는 땅을 둥그렇게 파기보다 네모로 파서 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땅을 둥그렇게 파서 식물을 심으면 그 뿌리가 부드러운 새 흙으로 뻗어나가다가 단단한 땅을 만났을 때 더 나아가길 포기하고 둥그렇게 메꿔진 부드러운 흙의 가장자리로 돈다고 한다. 마치 화분 속 식물처럼. 하지만 땅을 네모로 파면 뿌리가 네모의 한 면을 따라가다가 단단한 땅을 만난다. 한 번쯤 옆으로 돌아간다 해도 곧 다시 다른 쪽 가장자리에 부딪힌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다 보면 뿌리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제야 단단한 땅을 뚫고 나아가 더 깊이 더 넓게 뿌리를 내린다는 이야기였다.


놀랍지 않은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동그란 구멍에서 돌고 돌다 보면 인생의 큰 어려움은 피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그 조그만 구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내 뿌리에 내가 엉키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네모난 구멍에서 단단한 흙으로 나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려고 애쓰다 보면 뿌리는 더욱 튼튼하고 견고하게 더 멀리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세상의 진리는 똑같아 보인다. 도전하라. 그리고 극복하라.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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