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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Jan 20. 2023

아빠는 오늘도 괜찮다고 말한다


열두 시 정각, 아웃룩 캘린더가 알림을 띄운다. 전화.


한국 시간 여덟 시. 아빠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믹스 커피를 한잔 한 후 나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한다. 영상 통화라서 사무실을 빠져나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화면이 켜지고 엄마, 아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에게 묻는다.


아침 식사 많이 하셨어요.

아빠가 대답한다. 배 터지게 먹었지요.

오늘 날씨는 어때요.

날 좋아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요.

괜찮아요.


매일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아빠와 대화하는 중간중간 엄마가 끼어들어 아빠의 대답을 바로 잡아 준다.


밖에 비 와. 추워.

허리 아프다고 난리야.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라고 엄마는 깔깔 웃는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 아빠는 맨날 쿠사리만 먹는다며 허허 웃는다.


아빠는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나 보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잊지 않았다.

어제 일은 잊었어도 당신 딸과 사위와 강아지들의 안부를 묻는다. 오랜만인 것처럼.


엄마에게는 친구같이 살가운 딸이었지만 아빠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아빠 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이가 되어 버린 아빠에게 손하트를 그리며 사랑해요, 라고 말해본다.

이따 집에 와서 실내 자전거 10분 꼭 타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자전거에 오르게 하는 건 엄마의 몫이다. 아빠가 기억할리 없기 때문에.


손을 흔들며 비디오가 꺼질 때까지 활짝 웃는다. 휴대전화를 내리고 한 숨 내쉰다.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빠는 오늘도 괜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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