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를까 말까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긴 머리를 유지했다. 여중, 여고를 거치며 귀밑 5센티를 고수해야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바로 전부터 머리를 길렀다.
그리고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리를 짧게 자른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스물한 살 때 첫 남자친구와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고(결국 못 헤어졌다) 서른 살이 넘어서 비슷한 이유로(지금 생각해도 난 참 철이 없었다) 또 잘랐다. 그리고 오 년 전쯤 이번엔 별 이유 없이 잘랐다. 그렇게 이 년 짧은 단발로 살았다.
난 머리숱도 많고 반곱슬에다 이상하게 머리가 잘 안 말라서 머리를 말리는 데만 삼십 분은 기본이다. 단발로 살 때는 감고 말리는 게 조금 편했지만 아침마다 뻗친 머리를 정리해야 해서 고생했다. 그러다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다시 길러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왜 인생 마지막이냐 하면,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마흔이 넘으면 짧은 머리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굴은 늙었는데 치렁치렁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건 사람들에게 민폐(이것도 참 과대망상, 누가 내 머리에 신경이나 쓴다고)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삼 년 가까이 길렀나 보다. 이제 겨우 내가 이삼십 대 고수했던 머리 길이가 됐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머리는 전보다 천천히 자라는 듯했고 많이 빠졌고, 자라서도 힘이 없이 잘 엉켰다. 거기다 새치를 커버하려니 염색을 자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머리가 상하고 그래서 자주 다듬어줘야 하는 악순환을 겪었다.
또 머리를 다듬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살짝 다듬고 긴 머리를 좀 더 사수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포기하고 짧게 자를 것인가. 그리고 또 한 번 이번에 자르면 진짜 내 인생에 더 이상 긴 머리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릴 때 일찍 죽고 싶었다. 늙고 추해져서 골골대며 사느니 한 쉰 살까지만 살고 죽어도 괜찮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을 넘다 보니 이제는 한 칠순까지만 살면 좋겠다, 쉰까지만 긴 머리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서른 후반쯤 됐을 때였을까,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어리게 보였다. 은행에 가도, 관공서에 가도, 학교 선생님들까지 나보다 어려 보였다. 언제나 그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은 내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 기준은 내가 정한다.
어떤 기준을 정하고 따르고 그러다 바꾸고,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서 나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온갖 이유를 끌어와 내 기준을 정당화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내 인생에서 제외시키기도 한다.
한 번은 머리색이 밝은 남편에게 말했다. 너는 새치가 생겨도 눈에 잘 안 띄니 좋겠다.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맞받아친다. 너는 새치가 생길 머리라도 있지.
그래, 내 기준은 세상의 기준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