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어제는 열한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십일 년 동안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많았다. 우리는 참 많이도 싸웠다. 생각해 보면 징글징글하다, 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도, 우리 관계도 꽤 많이 변한 것 같다.
남편은 처음부터 참 좋은 사람이었다. 배려 깊고 많이 해주려 했다.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대화로 고쳐나가려 했고 싸워도 잠들기 전 꼭 화해해서 그 언짢고 우울한 기분을 다음 날까지 이어가지 않으려 했다.
나는 달랐다. 고집스럽고 욱하는 성격의 나는 남들에게는 감추는 못된 모습들을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는 마음껏 내보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내 감정이 먼저여서 막 내질러놓고 너무 했나 싶은 적도 많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제는 남편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횟수도 줄고, 내가 화를 내야 할 땐데 자기가 먼저 화를 내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대신 내가 좀 더 자주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됐고, 남편이 화낼 때 소리치지 말고 이야기하자고 침착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됐다. 그러다 결국 내가 더 큰 소리를 내는 때도 종종 있지만.
그럴 때 남편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과거에 내가 자기를 쏘아붙였던 일들에 한이 맺혀 지금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도 같다. 나는 아직 화를 내기 전인데 이미 화를 낸 것처럼 말을 하곤 한다. 그럼 나는 정말 정말 억울하다. 그 억울함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고 그럼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못되게 굴었던 일들이 내게 되돌아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일, 기념일 같은 걸 별 일 아니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그런 날에 목숨을 거는 편이라 맞춰주기 참 피곤했다. 나는 어차피 같이 벌어 같은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으로 선물을 사서 주고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선물이란 내가 갖고는 싶은데 내 돈 주고 사기는 애매한 무언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걸 매년 몇 번씩 고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편은 지난 십일 년 동안 내 직장으로 꽃다발도 보내고 내가 언급했던 무언가를 기억했다가 선물로 주기도 했다. 내 주입식 교육 덕분(?)에 이제는 꽃을 사지 않는다. 선물도 좀 더 쓸모 있는 물건을 고르려고 노력하는 것 같긴 한데 이 부분은 좀 더 교육이 필요하다. 한 십 년쯤 더 걸릴 거라고 본다.
내가 이런 성격이다 보니 남들에게도 생일이니 기념일이니 하는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인데 어제 어쩌다 직장 동료에게 말을 꺼내게 됐다. 상황은 이랬다.
우리 부부는 코로나 이후 일주일에 사흘 출근, 이틀 재택근무를 고수하고 있고 출근하는 날에는 대개 남편이 만든 샌드위치로 점심을 싸간다. 그저께 저녁,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면서 나보고 샌드위치를 만들라길래 툴툴거리며 억지로 만들었다. '우와, 기념일 선물!'이라며 장난을 쳐서 '그래, 그럼 일 년에 한 번'이라고 혼내줬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결혼기념일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문득 꺼낸 he's my best friend, 라는 나의 말에 동료는 that's very special, 이라며 감탄했다. 그제야 나는 아, 그렇구나, 특별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잔소리꾼에 허당이지만 그래도 내가 무슨 얘기든 숨기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직장 일이나 부모님 일로 고민할 때면 자꾸 해결책을 마련해주려고 해서 문제지만. 그것만 빼면 그래도 꽤 괜찮은 이야기 상대다.
퇴근길,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타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이 엄청 감동하여 너도 내 best friend라고 덧붙인다. 사실 집돌이인 남편에게 나는 only friend에 가깝다.
아이가 없는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둘이 의지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다투고 화해하며, 하지만 끝까지 같은 편에 서서. You and me against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