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5월이다.
나에게 5월은 그다지 중요한 달이 아니다. 뉴질랜드는 5월에 휴일도 없고 날씨도 그다지 좋지 않다. 이번 주만 해도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다. 4월까지 계속 이어지던 공휴일들은 5월부터 휴지기를 맞는다. 다행히 6월에는 King's Birthday(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Queen's Birthday였던 날이 King's Birthday로 바뀌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한다)가 있고 7월에는 Matariki(뉴질랜드 원주민이 마오리 새해)가 있다. 그러고 나면 10월 노동절까지 휴일이 하나도 없다. 한 해의 암흑기인 셈이다.
반면에 한국은 5월에 휴일이 아주 많다. 근로자의 날에서 출발해 어린이날, 석가탄신일까지 바통을 이어받는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까지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은 달이다. 한국에 살지 않는 나는 그런 날들을 잊기 십상이지만 어버이날만은 그냥 넘길 수 없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아니 멀리 있기 때문에 그런 날마저 그냥 넘어가버리면 안 된다.
근래 들어 엄마가 아팠다. 엄마 말로는 친구들을 만나도 다들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신세한탄을 하다가 결국엔 다 나이 탓으로 끝난다고 한다. 이번에 아프면서, 이제 엄마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5년 전 가을, 엄마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와 둘이 여행을 했다. 둘이서만 바르셀로나와 근교를 5일 간 여행하고 가톨릭 여행사의 패키지에 참여해 11일, 그중 5일을 순례길의 끝자락 100킬로미터 남짓되는 거리를 걸었다. 가장 많이 걸은 날은 31킬로미터, 거의 4만 7천 보를 걸었다. 그때 엄마는 아주 훨훨 날아다녔다. 나도 걷는 데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데 엄마를 따라가려면 어지간히 발을 놀려서는 안 되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몸이 자꾸 아프다고 한다. 엄마가 아프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가서 밥을 한 끼 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같이 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런 건 둘째치고 아빠만 조금 챙겨줘도 엄마에겐 큰 도움이 될 거다. 어느 날 밤, 배가 너무 아팠다는 엄마는 응급실에 가야 하나 하면서도 그럼 아빠 데이케어 센터는 누가 보내나 하는 걱정부터 들더라고 했다.
아빠는 원래도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치매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엄마가 너무 아파 데이케어에서 돌아온 아빠에게 돈을 쥐어주며 나가 한 끼 사 먹고 오라 했더니 한 그릇 사 올까, 하는 말도 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슬펐다. 그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반찬과 국 몇 개를 주문했지만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러니 어버이날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한다. 그렇지만 매년 뭘 사야 할지 고민이다. 다행히 올해는 엄마가 꽃 사보낼 거면 작은 화분이나 하나 사서 보내라기에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 공기정화도 되고 가습도 도와준다는 작은 화분을 찾아냈다. 그리고 몸살에 자꾸 시달리는 엄마를 위해 경옥고도 주문했다.
한동안 뭘 사 보내야 하나 고민은 했지만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쉽게 해결했다. 이렇게나 쉬운 효도라니.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서 내 죄책감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치매 관련 카페에 자주 들러 글을 읽고는 한다. 최근 한 회원이 이런 글을 썼다. 치매 엄마 무릎에 손을 올렸는데 왜 이리 차냐며 그 손을 꼭 잡고선 당신 웃옷을 들추고 배에 손은 대주더란다. 단기 기억도 없고 기저귀를 차는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 그 글을 읽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늦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잊지 말자.
세상의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