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어떤 사과가 좋은 사과?
며칠 전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운전해서 쉬지 않고 가면 4시간 거리인 혹스베이라는 지역이다. 다행히 바로 옆, 차로 30분 조금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네이피어라는 도시에 공항이 있다.
이곳은 1931년 대지진으로 2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났고 해저에 있던 40 제곱 킬로미터 땅이 육지가 되기도 했다. 아트데코 건물이 많고 바다 근처라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기후가 온화하고 토질이 좋아서 과수원이 많다. 포도밭과 함께 와이너리도 많아서 와인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45분 거리지만 우리 집에서 공항까지 1시간, 기다리는데 1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고 내리고 1시간, 워크숍 장소까지 택시로 30분. 거의 3시간 반에 걸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번 워크숍은 해외로 수출을 하거나 하고자 하는 회사들을 타깃으로 이루어졌다. 과일이 유명한 고장이다 보니 사과를 수출하는 회사 두 곳의 직원들이 워크숍에 참여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한 곳은 진짜 한 입 거리로 작게 재배한 스낵용 사과를 수출하는 곳이었다. 색다른 아이디어로 최근 몇 년간 상도 많이 받았고 아시아부터 중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 수출을 하고 있다. 웃기는 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브랜드 사과를 이곳 마트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출에만 전념하고 있는지 아예 볼 수가 없다.
이 회사의 직원 하나가 사과를 먹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크게 보자면 뉴질랜드를 포함해 서양 문화에서는 사과를 그냥도 먹지만 베이킹이나 요리에 사용하는 경우도 무척 많은데 동양 문화에서는 그냥 생과일로만 먹는다는 것이다. 알고는 있었는데 딱히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사실이다.
또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아기 얼굴만큼 큰 사과가 좋은 사과라고 하는데 여긴 아기 주먹 만한 사과가 주를 이룬다는 거다. 사과를 먹을 때도 한국에서는 농약을 닦아낸다고 과일을 아주 잘 닦아 먹는데 여기 사람들은 바지에 슥슥 닦아 먹거나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
워크숍 도중 사과를 수출하는 두 회사 직원들에게 서로를 경쟁회사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크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방금 전 말한 회사는 사과를 스낵의 개념으로 수출하고 있고, 다른 회사는 사과를 그냥 과일로 수출하고 있다.
그래서 과일로 사과를 수출하는 회사는 수출국가에서 나는 지역 과일과 경쟁해야 하고, 스낵으로 사과를 수출하는 회사는 우리가 보통 간식으로 먹는 음식들과 경쟁하는 셈이다.
같은 과일로도 이렇게 다른 사고가 가능하다. 마케팅이 이래서 중요한가 보다.
뉴질랜드 하면 떠오르는 과일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 물어도 키위라고 할 거다. 그중에서도 제스프리. 키위는 사실 중국에서 왔지만 키위의 원산지를 중국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는 키위가 신기하고 귀한 과일이었다. 가끔 키위를 사 오면 엄마는 과도로 깎아서 씨가 동그랗게 원을 이룬 모습이 보이도록 편으로 잘라주었다. 그러면 우리 가족은 디저트용 포크로 찍어 먹었다. 그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은 키위를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 나는 이 방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키위를 그냥 먹는다. 털이 숭숭 박혀 까끌거리는 걸 그냥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찝찝한데 말이다.
이렇게 같은 먹거리를 다르게 먹는가 하면 다른 음식을 같은 용도로 먹기도 한다. 일례로 여기 사람들은 진짜 햄버거를 해장용으로 먹는다. 술을 많이 먹고 난 다음 날, 햄버거의 '햄'자만 들어도 속이 느글거리지 싶은데 그래야 속이 풀린다고 하니 참 다르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함께 워크숍을 진행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비행기에서 받은 사탕을 꺼내자 다들 자기 사탕을 꺼냈다. '캔디 타임'이라고 했더니 '캔디'가 아니라 '롤리'란다. 뉴질랜드는 영국식 영어를 쓴다.
같은 영어도 참 다르게 쓴다. 재미있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