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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Jun 01. 2023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요?

위급재난문자


어제는 재택근무를 했다. 코로나 이후로 지금까지 3일 출근, 2일 재택근무를 유지하고 있다. 여러 명이 사무실을 같이 쓰다 보니 재택근무를 하는 시간이 거의 유일하게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긴 문서를 읽거나 작성해야 할 때 이 시간을 주로 이용한다.


어제도 업무를 시작하고 한참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오클랜드에 사는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서울에 재난문자 발령했다는데, 대피할 준비 하라고??? 뭐야ㅜㅜ"


뭔 소린가 싶어, 안부 인사 먼저 하고 "서울에 왜?"하고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쏘았다는 내용. 


기사를 자세히 읽어볼 여유가 없었다. 한국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침잠이 없는 엄마는 벌써 일어났을 시간이기에 전화를 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이틀간 일도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전화를 하지 못했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에게 다짜고짜 "한국에 뭔 일 났어?" 하고 물었더니 엄마가 "문자가 왔네. 근데 대피할 데가 어딨어~" 하며 웃는다. 그리고선 하는 말이 아무 일 없을 거란다. 나도 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땐 그랬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무슨 일 있겠냐, 하며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비행기로 13시간 떨어진 타국에 사는 딸의 마음은 다르다. 몇 년 전엔가 한참 남북관계가 안 좋고 미국도 북한에 적대적인 발언을 할 때, 그때도 그랬다. 이런저런 생각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 어떻게 엄마, 아빠를 빨리 뉴질랜드로 모시고 올 수 있을까, 비행기가 뜨기나 할까, 뜬다면 어떻게 표를 구해야 할까, 등등.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사달이 나도 남일처럼, 항상 있는 일이고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이런 기사를 읽고 "한국에 있는 너희 가족들은 괜찮아?" 묻는 사람들에게 "아무 일 없어. 별 거 아니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나고 자라고 살았던 작은 원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면서 두려워졌다.




뉴질랜드에는 지진이 잦다. 크고 작은 지진이 적잖이 일어난다. 내가 처음 겪은 지진은 결혼하고 일 년쯤 후에 집에 있을 때였다. 우리 집 고양이가 한 1미터 높이로 펄쩍 뛰고 남편이 나를 끌고 문지방에 가서 섰을 때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 그때는 지진이라는 게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웃었다.


내가 겪은 가장 큰 지진은 2016년에 일어났다. 뉴질랜드 남섬, '카이쿠라'라는 도시 옆 바다에서였다. 남편과 내가 한국에서 유럽으로, 다시 한국으로 갔다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마친 날 밤이어서 나는 자느라 몰랐다. 남편이 깨울 때 성질을 한 바가지 냈다. 그게 그렇게 큰 지진이었는지도 몰랐다.


시내에 있던 꽤 많은 건물들이 그대로 문을 닫았다. 위험해서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출근했더니 책장에 꽂혀있던 서류들, 캐비닛에 들어있던 찻잔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깨져 있었다.


그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지진이 무섭구나, 하고 느낀 게. 그래도 뉴질랜드에 살다 보면 흔한 게 지진이고 해변 가까운 동네에는 "쓰나미 존"이라는 표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작은 지진은 그냥 일상에 가깝다. 가끔 큰 지진이 일어나면 바다 가까이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피 문자가 간다는 말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왠지 남 일 같다.




소용돌이의 눈은 잔잔하다고 하던가. 그래서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을 때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잘 안 드는지도.


뉴질랜드의 지진 소식은 한국에도 자주 들려오나 보다. 나도 듣지 못한 지진 소식을 듣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연락해 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면 나중에서야 어디서 일어난 건지 찾아보고는 한다.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별일 없을 거야, 하며 그저 단정 짓지 않고 걱정하고 안부를 묻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집에 전화해 봐야겠다는 나의 톡에 난 안 해봤다며, "울 아빠 반응은 뻔하니깐ㅋㅋㅋㅋ"라고 했던 내 친구도 전화, 해봤겠지?


위성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경계경보는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그나마 다행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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