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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y 29. 2023

운전하는 노인들

Please be kind!


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들의 운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내가 이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년 전쯤이다. 아빠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조금씩 눈에 보이면서 엄마가 아빠를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특히 걱정이었던 건 아빠의 수집 강박과 운전이었다. 아빠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교육도 사랑도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예전부터 돈과 물건에 집착이 심했다. 


엄마도 워낙 꼼꼼하고 절약하는 사람이라 가전제품 같은 것도 진짜 깨끗하게 쓰고 섬세하게 다뤄서 한 번 사면 십 년은 기본으로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고장 나 버리려고 하면 아빠는 버리지 못하게 하고 고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물건들은 결국 창고에 처박히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버려진 물건을 보면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었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지만 이 이야기도 하려면 엄청나게 길다. 수집 강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데이케어에 다니면서 혼자 나다닐 시간이 거의 없어 지금은 그나마 조절되고 있다.




운전도 원래부터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자동차 사고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라는 것도, 이제는 운전이 위험하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던 아빠는 이제는 고물짝이 돼버린 자동차에 집착했다. 아빠의 제대로 된 첫 차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운전하고 나가서 사고라도 내면 그건 아빠 혼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와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으니 운전면허 취소가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아직 만 70세여서 면허를 자진 반납하지 않는다면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치매 선별 검사인 인지 능력 진단도 만 75세부터 해당되었다.


그래서 면허를 어떻게 하기보단 차를 처리하는 게 빠르겠다 싶어 아빠를 설득해 겨우 겨우 폐차시켰다. 이 과정에서 엄마도 나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래도 운전을 안 하게 되어 너무 다행이었다.


우리 아빠 같은 사람도 그렇게 운전을 하려고 하는데 인지 장애가 없는 분들은 당연하지 싶다. 나이가 들면서 사고가 행동이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 서서히 그렇게 된다. 물론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고령인 자동차 사고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브레이크를 밟으려다가 엑셀레이터를 밟았다거나 역주행을 했다거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도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특히 대중교통을 믿을 수 없는 뉴질랜드에선 차 없이 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운전하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 출퇴근할 때 차가 막히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20분 정도 타게 되는데, 최고 속도가 100km인 고속도로에서 80km 이하로 달리는 사람은 거의 나이 드신 분들이다. 가끔 아닌 사람도 있지만 80% 정도는 그런 것 같다.


남편은 지켜야 하는 건 칼 같이 지키고 크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 차만 타면 돌변해서 이 말 저 말을 쏟아낸다. 다른 차의 속도가 너무 빨라도 한 마디, 느려도 한 마디, 차선을 자주 바꿔도, 갑자기 바꿔도 한 마디, 운전자가 전화를 하거나 담배를 피워도 한 소리하고 두 차선이 한 차선으로 합쳐질 때 지퍼 잠그듯 한 차씩 차례대로 끼지 않아도 한 소리한다. 자기가 일부러 양보해 주고도 상대방 운전자가 고맙다는 표시를 안 하면 또 한 마디.


그럴 거면 안 해주고 말면 될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건지 당최 이해가 안 간다. 처음에는 운전하면서 뭐라고 좀 하지 말하고 잔소리도 하곤 했는데 이제는 포기다.




엊그제 출근길에 앞 차가 너무너무너무 느리게 가서 차선을 바꿨다. 나도 이젠 버릇이 되어 운전자를 확인하고는 '할머니'하고 했더니 남편이 또, 저렇게 느리게 갈 거면 고속도로를 왜 타냐며 투덜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먼 거리도 아니고 한 몇 백 미터 거리를 빨리 가려고 고속도로를 탄 거여서.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리도 언젠가는 저 나이가 될 테니 마음 곱게 쓰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우리가 저 나이 되면 차가 알아서 운전을 할 테니 괜찮다나.


최근에 읽은 책에서는 요양원이 근방에 지어지고 있어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 드는 게 죄도 아닌데 왜 죄인처럼 느껴야 할까.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런 일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개선되어 모든 세대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내 친구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런 꿈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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