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개>
오늘 새벽은 유난히 깜깜하고 쌀쌀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나는 여섯 시 반에 울리는 알람을 듣고 웬만하면 지체하지 않고 벌떡 일어난다. 어차피 누워있어 봐야 다시 잠이 드는 것도 아니고 꼭 나중에 후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진짜 일어나기가 싫었다. 이불 밖으로 내놓은 얼굴에 찬 기운이 스쳤고 이불속은 따뜻하고 안락했다. 게다가 막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어서 알람이 울렸을 때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헤롱헤롱했다.
결국 십 분만, 하고 더 버티다가 억지로 일어났다. 주방에 나와 강아지, 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며 바깥 기온을 확인하니 2도. 뉴질랜드 북섬은 어지간해서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2도라고 하면 꽤나 낮은 기온이다.
바깥은 그때까지도 깜깜했다. 해가 여전히 짧아지고 있어서 아침에도 7시가 넘어야 어스름 밝아온다. 찾아보니 동지(한국은 하지)가 21일이다. 며칠만 지나면 날이 다시 조금씩 길어질 거다.
언제나 그렇듯 토스트 두 쪽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강아지들과 집을 나섰다. 보통 7시 반쯤 출발하는데 오늘은 늦게 일어나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바람에 많이 늦어져 8시가 다 되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온 세상이 하얗다. 눈은 아니다. 웰링턴에서 제대로 된 눈을 본 적은 없다. 밤새 내려앉은 이슬이 살짝 얼어 온 땅이 하얗게 변했다. 잔디밭에 낀 살얼음은 흡사 고운 소금을 뿌려놓은 듯하다. 하얗게 변한 풀잎을 살짝 만져보니 딱딱하다.
요즘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며 오디오북을 듣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다. 물론 재미있는 오디오북이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오늘 아침에는 새 책을 다운 받았다. 대작가 김훈 님의 <개>라는 작품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한겨레 칼럼으로 접한 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짧은 칼럼에서도 힘 있고 가슴을 울리는 문체를 보여주어 언젠가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만 해보았을 뿐이다.
<개>는 개의 시점에서 본 세상의 이야기다. '보리'라는 누런 진돗개가 태어나면서부터의 이야기. '보리'는 다섯 형제 중 셋째다. 맏형은 힘겹게 세상 밖으로 나오다 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맏형이 문을 열어주어 나머지 형제들은 쉽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눈도 못 뜬 철부지였고 살기 위해서는 엄마의 통통한 젖꼭지를 찾아 힘 있게 젖을 빨아먹어야 했다. 엄마는 다른 아이들을 밀어내고 약한 맏형에게 젖을 먹여보려 했지만 맏형은 젖을 빨 힘도 없었고 곧 다른 아이들에게 밀렸다.
엄마는 햇살이 따뜻한 어느 날 가만히 누워있는 맏형을 길고 따스한 혀로 깨끗이 씻겨주고 목덜미를 물고 가 우물가에 내려놓더니 맏형을 삼켰다.
이 부분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가 나오고 꺼억꺼억 흐느껴 버렸다. 동물에 세계에선 도태될 것 같은 자식은 엄마가 미리 물어 죽인다고, 그리고 흔적조차 남지 않게 삼켜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늦잠을 자지 않고 일찍 나오면 길에 거의 사람이 없는데 오늘은 미적거리는 바람에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러나오고 목에서 꺼이꺼이 소리가 나오는 걸 꾹 참으며 빠르게 걸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미개에게 그건 본능이자 살아가는 방식이자 사랑이었을 거라는.
곧 진정하고 오디오북을 계속 들으며 걸었다. 들숨 날숨에 훅훅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을 보며 좋다고 뛰는 우리 강아지들을 보며.
공기는 차디차지만 햇살은 눈부시다. 하늘은 파랗고 얼어붙은 이슬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한참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이렇게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전 9시 41분, 현재 기온 4.5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