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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Jun 13. 2023

티아라 신드롬

걸그룹 티아라 아닙니다~


나는 '티아라 신드롬'이란 용어를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여성들을 위한 어느 강연에서였는데,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동작도 큼직큼직해서 강연 내내 자신감이 넘쳐 보이던 강연자가 자기도 티아라 신드롬이 있었다며 입을 뗐다.


그녀는 티아라 신드롬을 이렇게 정의했다. 티아라를 쓰고 구석에 앉아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채주기를,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내가 티아라를 언급하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아도, 누군가 내게 와서 티아라 참 예쁘다, 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


나는 이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안다. 나부터도 그렇고, 내 친구들, 내 동료들도 그렇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서양인, 동양인 상관없이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특히 동양인들, 한국인들이 더 심한 경향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나 '빈 수레가 요란하다' 같은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티아라 신드롬이란 개념은 협상, 리더십, 젠더 이슈를 주로 다뤄온 캐럴 프롤링거와 데보라 코브가 제시했고, 하버드 출신 셰릴 샌드버그라는 기업인이 자신의 책 <<린 인(Lean In)>>에서 언급하며 널리 알려졌다. 기본 개념을 쉽게 풀자면 많은 여성들이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굳이 본인이 떠벌리지 않아도 주위에서 알아보고 왕관을 씌워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승진 기회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자신을 숨기고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누가 칭찬을 해도 아니라고 부끄러워하며 손을 내젓는 여성들을 많이 안다. 칭찬을 하면 '고마워요'라는 말보다 '아니에요'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자기가 최고인 듯 내세우는 사람들도 안다. 항상 바쁘고 세상 일은 혼자 다 하고 혼자 모든 일을 다 해낸 사람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속이 텅 빈 사람들 말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모두 한데 묶어 '속이 빈 사람들'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은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남성도 물론 그렇겠지만, 여성으로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못 박아놓은 다짐들이 있다. 좋은 아내, 현명한 엄마, 거기에 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이 될 것. 앞 서 말한 강연에서 강연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청소를 도와주는 도우미가 오기 전에 집안을 정리하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와락 웃음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그녀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 포장되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포장지를 꺼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했던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자신도 '여성'과 '엄마'라는 이름에 묶여 살았다고.


아내와 엄마로 사는 삶이 틀렸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 엄마도 결혼하고 한평생 밖에 나가 일해서 돈 번 적은 없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럽다. 자기 한 몸 희생해 우리 가족이 잘 된다고 하면 죽음이라고 불사했을 엄마니까.


그렇게 따지면 나는 밖에 나가 돈벌이를 하고는 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은 없었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인생을 이십 년, 아니 그 이후까지 책임진다는 게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이런 우리 엄마와 나도 같은 점이 있다. 있는 힘껏 하고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아닌가, 아직 부족한 게 아닌가, 걱정과 의심에 사로잡힌 마음.




그저, 조용히, 묵묵히, 열심히, 내 갈길을 간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는다. 인생살이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 뿐이다. (혹시 '초코파이' 광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모르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우는 아이 젖 준다' 혹은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죽을 둥 살 둥 애쓰고 있는지. 남들에게뿐만이 아니다. 내 안에서, 티아라를 쓰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에게도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부족하지 않다고 말해주자.


그렇게, '겸손'과 '교만'의 사이 어딘가, '여유'와 '자신감'을 찾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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