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_케이블을 사랑한 펭귄
그날은 하늘도 탁했고, 마음은 그보다 더 뿌옇게 가라앉았다.
몇 주 전부터, 발주처 프로젝트 관리자가 우리 현장의 케이블 입고율에 대해 크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우리 회사의 케이블 입고율이 J 프로젝트의 다른 패키지를 수행하는 경쟁사 S보다 현저히 낮다며 현장을 휘젓고 다녔다.
회의 때마다 고함을 지르며, 우리측 고위 경영진을 몰아붙였다고 했다. 그 소리는 마치 환청처럼 나의 귀와 심장에 스며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케이블 납기 관리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 프로젝트 관리자가 본인 상사로부터 타 패키지와 비교를 당하며 우리 현장의 낮은 케이블 입고율에 대해 크게 혼났다고 한다. 기분이 무척이나 상했을 터였다.
그는 풍선처럼 부푼 몸에 짧은 팔다리를 가졌고, 둥근 눈과 뾰족한 코, 뻣뻣하게 다문 입술은 어딘가 펭귄을 떠올리게 했다. 펭귄은 매일같이 나를 본인 사무실로 불렀고, 케이블 입고율이 경쟁사보다 낮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쏟아냈다.
처음에는 그저 "에이, 며칠 이러다 말겠지" 하고 넘기려 했지만, 그런 상황이 매일 반복되자 점점 펭귄의 사무실로 불려가는 게 두려워졌다. 그의 말은 점점 더 모욕적이었고, 매번 같은 이야기를 1시간씩 듣다 보니 견디기 어려워졌다. "납기 관리를 왜 제대로 못하냐?" "문제가 뭐냐?" 그런 말들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내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는 말이었다. 사실, 본질은 펭귄이 상사에게 혼난 것이었다. 그가 기분이 상한 대가로 나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히고 있는 셈이었다.
펭귄은 사우디 현지 업체와 일하는 나의 고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날카로운 말들로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펭귄을 진정시키려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자극을 받았고, 나의 말은 벽에 부딪히듯 사라졌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My message is very clear.”
펭귄 같은 체구로 의기양양하게 앉은 그는, 그 말을 시작으로 한 시간 내내 멈추지 않고 말을 퍼부었다.
정작 그가 전한 ‘clear message’는 언제나 모호하고 불필요하게 장황했다.
처음엔 내가 뭔가를 잘못 이해한 줄 알았다. 어쩌면, 그건 단지 열정적인 설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자 확신하게 되었다. 이건 설명이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쏟아냄이었다. 내 의견은 묻지 않았다. 내가 말을 꺼내려 입을 열면, 펭귄은 언제나 손을 들며 내 말을 막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청중이 아니라, 그저 소리를 흡수하는 ‘벽’이 되었다.
그의 메시지는 확실했다.
그러나 그 속엔 이해도, 배려도, 경청도 없었다. 오직, 그의 감정만 있었다.
펭귄은 케이블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시간을 먹어치우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가 날 부를 때마다, 가슴 속에서 터질 듯한 분노와 무력감이 교차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비난과 모욕적인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 처음의 질문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이 사막에 올 때 품었던 목표와 열정은 근래의 고통 속에서 자취를 감춘 듯했다. 나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조차 흐릿해졌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열정이었을까, 성장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착각이었을까. 스스로가 너무
미워졌다.
그래.
Your message is very clear.
잘났다, 이 새자식아.
"남극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펭귄에게 불쾌하게 만든 점 미안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