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막_모래위의 동물 농장

3장_대머리 수탉과의 싸움

by 게으른 개미

그와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단지 ‘직무’라는 이름의 책임을 묵묵히 이행하고자 했다. 그는 발주처 하급 직원이었고, 나는 발주처와 계약을 맺은 EPC Contractor(건설 회사)의 일원이었다. 그가 요청하는 내용이 타당하다면, 나는 성실히 대응할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수탉 지켜보니, 메모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깃털 하나 없이 번들거리는 머리로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네 번 반복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탉이 업무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려니 생각하며 기꺼이 대응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처음 보는 엑셀 파일을 아무 설명 없이 이메일로 보내며 나보고 업데이트하라고 했다. 어떤 배경 설명도 없이 파일만 툭 던지는 일이 몇 달째 계속됐다.


중간중간 직접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메모를 남겼으면 좋겠다”, “비슷한 내용인데 제목만 다른 파일을 계속 업데이트 요청하는 건 비효율적이다”라고. 나는 이미 수많은 보고서를 일일·주간 단위로 갱신하고 있었기에, 수탉이 던지는 일까지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도 업무의 연장선’이라 여기며 그의 요청에 계속 응답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화근이었을까. 내가 그의 기대 이상으로 착실히 대응한 탓이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수탉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은 내가 본국 휴가 중일 때 일어났다. 집에서도 노트북을 켜서 일하고 있던 중, 또 하나의 정체불명의 엑셀 파일이 이메일로 날아왔다. 설명도 없이 “업데이트 해달라”는 말과 함께. 그 순간, 내 방 안에서 폭발했다. 휴가 중에도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도 서러웠지만, 무엇보다도 수탉이 나를 ‘하인’처럼 다루는 듯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아무 때나 파일을 던지고는 “업데이트해달라”는 식의 무책임함이 도를 넘었다.

내 근면성과 책임감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수탉의 태도는, 결국 선을 넘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뻔뻔함에 침묵할 이유도 없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눌러 담아, 단호한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은 내 상사가 아니다. 내게는 본연의 업무가 있고,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나를 당신의 비서나 하인처럼 대하지 말아라. 앞으로 당신의 요청에는 더 이상 응하지 않겠다.”


이번만큼은, 수탉의 목을 제대로 비틀어야 했다.


내 회신을 받은 수탉은 즉각 반응했다. 논점을 흐트러뜨린 채, 엉뚱한 말로 반격을 시도했다. 이메일에는 발주처와 우리 회사 팀원들이 참조로 들어가 있었지만, 수탉도 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주변에서 중재에 들어갔고, 나는 그와 더 이상 엮이지 않게 되었다.


이 사건은 내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아무리 내가 성실하게 일했다 해도, 누군가가 그 성실함을 ‘기본값’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면, 이미 관계는 기울고 있었다는 사실. 내가 ‘내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으로 누군가의

기대를 계속 넘어서선 안 된다는 것.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의 경계를 정하고 지켜내는 일이었다.


대머리 수탉은 더 이상 내 머리 위에서 울지 않는다. 그는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또 이런 놈이 나타나기만 해봐라. 쯧


" 여명을 맞이하며 부지런히 아침을 울리는 수탉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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