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_병주고 약주는 공작새
처음 그를 만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발주처 설계 담당자였고, 나는 조달 담당자였다. 피하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업무의 연결 고리 속에서, 맡은 업무는 다르지만 우리는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프로젝트는 막 닻을 올린 시점이었고, Task Force Team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일이 넘쳐나는 와중에, 공작새는 이미 '싸이코 같은 성격'으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 역시 그의 강렬한 첫인상을 똑똑히 겪게 되었다.
처음 만난 날,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예의상 노크를 했다.
"Hi, my name is ○○○. May I come in? I hope I'm not bothering you."
내 인사는 공손했지만, 돌아오는 그의 표정은 싸늘했다. 입을 열기도 전부터 공작새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마치 ‘당신과의 만남은 곧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듯한 눈이었다. 조심스럽게 준비해 간 내용을 설명하자, 공작새는 빠른 말투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엇이 부족하고, 왜 틀렸으며, 일이 왜 이렇게 진척되지 않는지를 쉼 없이 지적했다. 나는 준비한 말을 다 꺼내지도 못한 채 당황했고,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은 하나였다.
‘공작새, 진짜… 싸이코네.’
그날의 충격은 꽤 오래 갔고 얼떨떨함과 분노가 섞인채 동료들에게 그날의 일을 전했다.
그리고 공작새와 다시 마주칠 때마다, 첫 만남의 불쾌했던 감정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그를 보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마음 한구석에 쓸데없는 긴장이 피어올랐다. 마치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공작새처럼 멀끔한 외모.
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든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변덕이 숨어 있었다. 그의 말은 자주 방향을 잃고 불쑥 튀어나왔고, 분위기를 흔들어 놓는 재주가 있었다. 조용한 호숫가에 돌을 던지며 일부러 파문을 만드는 사람처럼.
회의 중에도 불필요한 질문이나 예민한 말로 물살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작새는 조직 내에서 중심에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존재감이 커 보이지만, 실상은 다소 아웃사이더 같았다. 꼬장꼬장하고 고집스러운 성향. 시대와 동떨어진 고집쟁이 노인같기도 했다. 설계 엔지니어들과 기술 논의를 하겠다며 8시간씩 사람을 붙잡기도 했지만, 실제로 해결된 문제는 손에 꼽았다. 실무자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명확한 결과를 내야 했는데 그런 그와의 괴리는 자주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작새는 남이 돈 쓰는 것을 몹시 불편해했다.
그는 언제나 커피값을 자신이 내겠다고 고집했고, 내가 사우디에 오게 되면 식사는 꼭 본인이 대접하겠다며 반드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맛있는 점심과 커피까지 대접해 주었다.) 겉으로는 까칠해 보이지만, 혹시 이것도 그만의 소심한 방식의 배려였을까?
J 프로젝트 TFT(Task Force Team)가 위치했던 한국에서의 마지막 근무일.
공작새는 TFT가 위치한 건물 1층 카페에서 그 동안 함께 일한 열 명 가까이의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커피를 돌리고, 살짝 눈물이 그렁해진채 그간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함께 일하는 내내 제법 지랄맞게 군 건 본인도 잘 안다며 사과를 건넸고, 자신에게는 돈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본인 친구들과의 경험담도 꺼내어 진심을 전하려 애썼다.
몇 주째 이발을 못 한 듯 머리는 부스스하게 자라 있었고, 그 모습은 평소의 '공작새'라기보다는 아프로 헤어의 갈매기에 가까웠다. 우습기도 하고, 어딘가 짠한 모습이었다.작별 인사에서 의외의 면모를 드러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싸이코 공작새였다.
" 오늘도 멋진 날개 관리에 여념이 없는 공작새에게 미안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