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_계급의 국경선 -외국인과 내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며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외국인)는 이 시스템 안에서 기계 부품보다도 못한 존재일까?’
겉으로는 국제 협력과 다문화 환경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현실은 훨씬 더 단단한
벽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유지했고, 우리는 철저히 그 밖에 머무른다.
이 글은 그런 ‘경계 밖의 체험’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이곳에 뿌리내린
구조와 문화에 대한 작은 관찰이기도 하다.
1.외국인은 그냥 ‘쓸 때 쓰는 사람’일 뿐
사우디에서 외국인은 말 그대로 ‘임시직’이다. 오직 일이 필요할 때만 불려왔다가, 쓸모가
없으면 바로 잊히는 존재이다.
특히 아시아인들은 ‘말 잘 듣는 노동자’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다. 따라서 현지인들에게 예의나
존중을 기대하는 건 사치에 가깝다.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는 태도는 그들에게는 그저 ‘불필요한
무게’일 뿐이다.
2.가까워질 수 없는, 종교가 만든 선
사우디 사회는 철저히 종교적 위계 속에 돌아간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은 프로젝트를
해도 우리는 그들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
우리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 선 너머의 사람은 끝내 ‘우리’가 될 수 없다.
이건차별이라기보다 그들의 사회 질서에 박혀 있는 ‘허용된 거리감’이다
3.책임지지 않는 구조, 떠넘기기의 기술
이곳의 일처리 방식은 간단하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사람’을 찾기보다, ‘책임을 떠넘길 사람’을 찾는 데 익숙하다. 지시만
있고, 그에 따른 실질적 지원은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느리고 비논리적이며, 결정된 내용조차 여러 사람을 거치며 왜곡된다.
결국 결과가 나쁘면 외국인 탓이 된다. 안에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4. 체면이 지배하는 위계의 공식
사우디에서는 ‘체면’이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위계를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다. 뭔가 실제로 있든 없든 ‘있는 척’은 기본이고, 보여주기식
태도도 익숙하다. 특히 외국인 앞에서는 ‘우위에 서야 한다’는 본능이 작동한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도 은근한 권력게임이 숨겨져 있고, 이것이 불균형한 관계를 유지하는 연료처럼 작용한다.
5. 협력은 없다, 오직 이기는 사람만 있다
사우디에서 협업은 거의 환상이다.
‘같이 잘해보자’보다는 ‘내가 이겨야 한다’는인식이 훨씬 강하다. 회의나 논의는 의견 교환의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기싸움을 잘하느냐의 문제로 흐르기 쉽다. 협력하려는 태도는 약해
보이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에,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손해를 본다는 인식도 강하다. 결국 진짜
일보다 감정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힘겨루기가 업무 전면에 나선다.
6. 외국인은 이익의 문턱 앞까지만
겉으로는 외국 기업과의 협력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시스템은 철저히 외국인을 ‘이용’만 하고
이익은 차단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계약 조건, 결제 승인, 세무 규정 등 모든 메커니즘은
내국인을 보호하고, 외국인의 영향력을 통제한다. 외국인은 투자는 하되, 수익을 가져가는 건
어렵다. 성과는 현지에서 빨아들이고, 외국인은 일만 하고 빠져 나간다. 이 시스템은 외국인을
절대 중심으로 올려놓지 않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교활하고 교묘하다.
이 구조는 중국어 속담 ‘공수투백랑(空手套白狼: 맨손으로 늑대를 잡다 -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려 이익만 취하는 구조)'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사우디를 상징하는 동물이자 이 땅의
'수단'과 '목적'을 은유하는 낙타 ‘락(駱)’을 써서 변형한다면 ‘공수투백락(空手套白駱)'이 될 수
있다. 즉, 맨 손으로 낙타를 꿰차 이익을 챙기는 것. 사우디 사회는 자신의 손을 대지 않고도, 결과물
을 쥐고 이익을 챙기도록 설계 되어있다.
그냥 쉽게 말해 재주는 외국인이 부리고 돈은 사우디가 갖는다.
사우디에서 외국인으로 일한다는 건 우리의 전문성, 시간, 에너지는 필요할 때만 호출되고, 그 외의
순간엔 존재감조차 없다. 그 틈에서 우리는 늘 경계인으로 남는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친절한 현지인 동료도 있고, 예외적인 순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예외를
만들지 않는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는 낯선 문화와 구조를 조금이나마 더 명확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