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Cookie) 창간호

Culture crush : 외화와 팝송으로 시작한 나의 덕질 입문기

by 게으른 개미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는 텔레비전 1번인지 0번인지에 AFKN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영어를 몰랐으니 일부러 챙겨 보지는 않았지만,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끔 NBA 농구 중계가 튀어나왔다. 코트가 작아 보일 정도로 덩치 큰 선수들, 슛이 들어갈 때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관중들. 열정적으로 쏟아내는 중계자의 말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 에너지만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내 생애 첫 외화는 <천사들의 합창>으로 기억한다. 무려 멕시코 방송국에서 제작된 작품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KBS에서, 1995년에는 EBS에서 재방영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내가 정확히 어느 방송국을 통해 봤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몇몇 등장인물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아이들에게 늘 다정했던 미모의 히메나 선생님, 부잣집 딸이라 손에 늘 하얀 레이스 장갑을 끼고 다니던 성격 까탈스러운 마리아 호아키나(그렇다고 마냥 미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던 학급 친구들.

멕시코의 어느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프로그램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아이들이 입고 나오는 하늘색 교복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였고,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지구 반대편 나라의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낯설기보다는 묘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 주는 드라마였다.(*1)


image.png <천사들의 합창 : 원제 Carrusel>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주말이 시작된다는 설렘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후 1시 30분에 KBS에서 방영하던 <긴급출동 911>을 보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실제 911 출동 사례를 엮은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에는 더빙이 대세였기 때문에 자막 없이 성우들의 목소리로 방송되었다.(*2)


1.png <긴급 출동 911 : 원제 Rescue 911>

고학년이 되면서는 <베이사이드의 얄개들>(SBS)이라는 시트콤이 방영되었고, 미국 학생들 이야기라는 설정이 호기심을 자극해 열심히 시청했다. <아빠 뭐하세요?>(KBS) 역시 빼놓을 수 없이 재미있게 보던 프로그램이었다. 추석이나 설 연휴만 되면 어김없이 방송해주던 <미스터 빈>도 단연 빼놓을 수 없다.


2.png
3.png
4.png
<베이사이드의 얄개들 : 원제 Saved by the Bell> <아빠 뭐하세요? : 원제 Home Improvement> <미스터 빈 : 원제 Mr.Bean>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지금처럼 외국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외화 프로그램들은 외국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바깥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접점이었다.


중학생이 되자 EBS 교육방송을 보기 위해 집에 케이블 TV를 연결했다. 하교 후 교육방송도 나름 성실히 보기는 했지만, 사실 내가 열광했던 채널은 27번 Mnet과 43번 KM TV였다. 대략 저녁 7시쯤 VJ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MTV 음악방송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3)백스트리트보이즈(Backstreet Boys)의 As Long As You Love Me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본 '닉 카터'(Nick Carter)의 모습은 지금도 잊기 힘든 문화 충격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 TV 속에서 영어로 노래하고 있는 금발에 파란 눈의 미소년의 생경한 모습에 나는 적잖은 시각적, 청각적 충격을 받았다. 이것을 계기로 팝송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고 팝 가수들은 살아있는 영어 선생님이었다.

2.닉 카터 2.png
4.닉 카터.png
1.닉 카터.png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오는 미모다

MTV 프로그램 중에서도 '스텔라'(Stella)라는 VJ가 진행하던 방송을 가장 좋아했다. 교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미 어른인 언니가 종종 영어를 섞어 쓰며 팝송을 소개하고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광고를 보고 와야 할 때는 “Stay tuned”, 뮤직비디오를 소개할 때는 “Hope you enjoy”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던 그 모습이 말이다. 라디오는 <이무영의 팝스 월> 를 좋아해서 매주 챙겨 들었다. 이무영 씨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 외국 배우나 가수가 내한하면 우리나라 대표 인터뷰어로 자주 등장했고, 한때는 <한밤의 TV 연예> 리포터로도 활동했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한국에 내한했을 때, <팝스 월드> 에 출연했는데 그 방송은 녹음해 두고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안. 녕. 하쎄여. I’m Christina Aguilera and you’re listening to Pop’s World.”


광고가 끝나고 방송이 다시 시작되기 전, 한동안 인사말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버전으로 흘러나왔는데 그 목소리는 아직도 내 귓가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팝송과 할리우드 영화는 대학 입시에 대한 부담,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출구였다. 좋아하는 가수가 새 앨범을 내면 CD를 사는 것이 큰 취미였고, 그 시절 모은 CD는 몇백 장이나 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면 꼭 영화관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갔다.(*4)


대학생 무렵, 친구들은 종종 내게 연예 기획사에 취업을 하라거나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 말들을 흘려듣지만은 않았다. 팝 칼럼니스트나 잡지사 기자, 신문사 연예부 기자, 음악방송 PD 같은 직업을 은근히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느 것도 실제로 시도해 보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로망’에 가까웠던 것 같다.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말이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에 크게 자신이 있었던 편도 아니었고, 그보다는 나보다 훨씬 더 마니악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라도 신문사 연예부나 잡지사 기자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로 인터뷰를 맡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고나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내가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는 내가 좋아해 온 것들을 정리해 나가는 기록이자, 한때 꿈꾸었던 직업을 아주 편안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실현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내가 팝송이나 미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눈빛이 반짝이고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실린다고, 어느 친구가 말해 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학창 시절에 순수하게 열광했던 작은 순간들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Crumbs

(*1) <천사들의 합창>의 오프닝 곡 역시 무척 좋아했다. 가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멕시코가 스페인어를 쓴다는 사실도 모를 때였다) 핸드벨로 연주되는 멜로디가 아주 아련하고도 아름다웠다. 서른이 넘어서 문득 그 노래가 떠올라 가사를 찾아보고는 혼자 픽 웃었다. 알고보니 가사는 “아이들의 회전목마, 사랑의 회전목마, 환상의 회전목마, 회전목마, 회전목마, 인생은 회전목마” 였기 때문이다.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인생은 돌고 돈다’는 이야기였을까? <천사들의 합창>은 이후 번역되어 책으로도 출판되었는데, 동네 동사무소 도서관에서 그 책을 발견했을 때 너무 기뻤다. 괜히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신나게 빌려 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2) 그렇게 열심히 시청했지만, 정작 내가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아빠 뭐 하세요?>의 원제가 왜 <Home Improvement>였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어쩐지 아빠 역할의 주인공 아저씨는 집 마당에서 늘 무언가를 고치고 있더라니... 그리고 어느덧 초등학생이던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워크캠프 참가를 위해 미국에 갔다. 그곳에서 영국(England) 친구들을 만났는데, 내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 사람 세 명을 알려 달라고 했고, 나는 엘리자베스 여왕,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미스터 빈을 말했다.


(*3)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H.O.T나 G.O.D의 팬이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나는 같은 대상을 향한 열정과 연정을 함께 나눌 덕질 메이트(Mate)가 없었고, 매번 혼자서 벅찬 감동을 감당해야 했다.


(*4) 중학생 시절에는 동네 음반 가게에서 테이프를 사 모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한층 멋지게 CD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새 앨범을 사면 그 안에는 접혀 있다가 상소문처럼 촥(!) 펼쳐야 하는 긴 가사집이 들어 있었고, 함께 실린 부클릿(Booklet)에는 음악평론가들이 가수와 이번 앨범에 대해 소개하고 평을 전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매번 아주 진지하게 읽었고, 그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참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맛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