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Cookie) 제2호

The Gate: Nick Carter

by 게으른 개미

닉 카터가 나를 팝송의 세계로 인도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As Long As You Love Me> 뮤직비디오 속에서 처음 마주친 그의 모습은, 당시의 나에게 ‘미국’ 그 자체를 상징했다. 화면 가득 펼쳐지던 낯선 풍경, 한국 무대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던 자유로운 표정과 몸짓, 과장되게 여유로운 옷차림까지. 내가 머릿속으로만 어렴풋이 상상하던 ‘미국’이라는 나라를,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완성시켜준 사람이었다.

image.png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그의 나이는 불과 만 열일곱, 많아야 열여덟 살에 불과했지만, 큰 키와 넓은 어깨, 호리호리한 체격을 자랑하던 그는 당시의 나에게 완연한 ‘어른’으로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입고 있던 재킷은 이태원 큰옷 전문 매장에 걸려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유난히 커다란 사이즈였다. 하지만 그 어설픈 핏마저도 낯설고 멋지게 느껴졌으니, 아마 그 시절의 미국 패션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뮤직비디오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때부터 겉잡을 수 없이 팝송에 빠져들었다. 인터넷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검색만 하면 정보가 넘쳐나던 시대도 아니었고, 설령 무언가를 찾더라도 영어로 된 정보를 이해하기에는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동네 음반 가게에 가서 테이프를 사고, 가사지에 적힌 가사를 따라 적고 외우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수없이 반복해 듣는 것.(*1) 팝송을 듣는다는 건, 그 시절의 나에게 취미라기보다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에 가까웠다.


닉 카터가 플로리다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중에 찾아보니 출생지는 뉴욕주 제임스타운이었고 플로리다주 러스킨으로 이주한다), 나는 사회과부도 책을 펼쳐 미국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플로리다가 지도 어디쯤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언젠가는 꼭 저곳에 가 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스스로했던 그 약속은 아직까지도 지키지 못했지만 여전히 내 버킷 리스트에 고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흔히 LA 근교의 애너하임 디즈니랜드를 떠올리지만, 나의 로망은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다. 규모도 훨씬 크고, 무엇보다 이곳이 디즈니랜드의 ‘원조’라는 점이 마음을 끈다.(제일 중요한 건 닉 카터의 연고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 위의 한 지명에 품었던 그 소망 역시 한 가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닉 카터가 백스트리트 보이즈로 데뷔했을 당시 겨우 만 열다섯, 미국 나이로 열여섯 살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다섯 남매 가운데 장남으로서 어린 나이에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는 이야기들도. 화려한 세계적인 스타의 이력 뒤편에, 결코 가볍지 않은 가족사가 놓여 있었다는 것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2) 또래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어른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그는, 팀 안에서는 막내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던 소년의 얼굴과, 현실에서 책임과 생계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한 사람의 삶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언젠가 멤버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형들이 농담처럼 “닉은 정말 말을 안 들었다”고 말하자, 닉 카터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되받아쳤다.


“I was thirteen. What do you want from me?”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결성 시기는 1993년이었고, 1980년 1월생인 그는 실제로 미국 나이로 열세 살이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 한가운데로 던져졌던 소년의 솔직한 항변처럼도 들렸다. 그는 그룹 활동과 더불어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고, 젊은 시절에는 유명세만큼이나 많은 잡음도 뒤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 모든 사연을 알기 전의 나 역시 그저 TV 속에서 영어로 노래하던 한 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이였다. 닉 카터는 나에게 하나의 가수가 아니라, 꿈의 상징이자 새로운 세계의 입구였고, 막연한 희망 그 자체였다. 팝송을 듣기 시작했고, 영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언젠가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나의 ‘첫 관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지나 들어간 세계에는, 곧 또 다른 이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3)


Cookie Crumbs

(*1) 수백번도 넘게 들었는데 테이프는 늘어지지 않았다.

(*2) 한 사람의 인생 굴곡을 몇 줄의 문장으로 온전히 담아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닉 카터의 가족사는 그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딸 셋, 아들 둘인 다섯 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고, 막내아들 아론 카터 역시 가수로 이름을 알리며 유명인이 되었다. 여동생 레슬리 카터 또한 영화 <슈렉> OST [Like Wow]로 가수 데뷔를 했지만, 이후 뚜렷한 활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재능 있는 형제들이 모인 가족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러 갈등과 균열이 존재했다. 부모의 불안정한 관계와 충분하지 않았던 보호 속에서 자란 형제들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보다는,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방영된 리얼리티 쇼 <하우스 오브 카터> 를 통해 닉과 아론이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 그리고 형제들 사이의 깊은 불화를 접했을 때,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밝고 장난스러운 닉 카터의 모습과의 차이점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론 카터와 레슬리 카터는 모두 비극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사실은 닉 카터의 가족사가 지닌 무게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점은, 그가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 꾸린 가정 안에서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한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나를 팝송의 세계로 초대했던 그가, 앞으로는 더 많은 평안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3)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리는 어느새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다.

image.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쿠키(Cookie)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