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Cookie) 제 5호

Katy Perry의 변신을 설계한 사람들 - 보이지 않는 손

by 게으른 개미

처음 팝을 들었을 때 나는 가수의 얼굴부터 보았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닉 카터는 내게 미국 소년을 정의해주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팝 아이콘’ 그 자체였다. 에미넴은 재능과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가 충돌할 때 생기는 불꽃을 음악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내 청소년기의 팝은 언제나 무대 위의 얼굴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 내 열광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꾸준하게 비슷한 박자와 중독성 있는 리듬감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멜로디와 가사들. 도대체 누가 이 모든 노래를 만들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밀려왔다.


물론 답은 간단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있는 것이다. 가수 뒤에는 작사·작곡·편곡가가 있고,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손들이 붙는다. 음악 방송이 끝난 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 그제야 무대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결과물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무대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보이지 않는 손, 바로 기획자 말이다. 팝송 뒤에는 늘 맥스 마틴(Max Martin - 본명 : Karl Martin Sandberg)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깊이 파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대단한 사람’, ‘천재’, 그리고 당연히 미국인일 거라고 막연히 믿었을 뿐이다.(그는 스웨덴 사람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내 시선을 끌은 여성 솔로가수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노래 “I Kissed a Girl”(*1)에서도 맥스 마틴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역시나” 하고 습관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라는 말 뒤에는, 아직 내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먼저 케이티 페리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image.png < 팝가수 데뷔 1집 앨범 - One of the Boys (2008) >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케이티 페리는 실제로 CCM 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본명은 캐서린 엘리자베스 허드슨(Katheryn Elizabeth Hudson).(*2) 펜테코스탈(Pentecostal: 기독교 안에서 성령의 직접적 역사와 체험을 매우 강조하는 신앙) 계열 목사 부부의 딸로 자라며 세속 음악과 TV가 제한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2001년, ‘Katy Hudson’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크리스천 록 앨범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레이블의 파산과 함께 그녀의 커리어도 사실상 멈춰섰다.

image.png < CCM 가수 시절>

CCM 업계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드라마틱하며 너무 질문이 많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문제는 그녀의 재능이 아니었다. CCM이 그녀를 담기엔 너무 좁은 프레임일 뿐이었다.(훗날 케이티 페리는 “나는 믿음에 대해 늘 ‘왜?’를 묻는 아이였고, CCM은 그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였다.” 라고 말했다.) LA에서 그녀와 작업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케이티 페리는 유머러스하고, 과한 색감과 만화같은 설정도 자신만의 전략과 예술로 전환하는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런 사람이 CCM 가수 시절 본모습을 숨겨야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 간극을 가장 정확히 읽은 이들이 바로 프로듀서 글렌 발라드(Glen Ballard: 작곡가/프로듀서)였다. 그는 케이티 페리의 초기 커리어에서 멘토이자 조력자 역할을 했고, 이후 그녀를 선택한 캐피톨(Capitol) 레코드의 A&R(Art&Repertoire) 팀 역시 같은 가능성을 보았다. 그들은 가창력이나 이력보다, 실제 케이티 페리가 지닌 캐릭터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반응하듯 Dr. Luke와 맥스 마틴이 합류한다. 그들이 본 케이티 페리는 ‘보수적인 CCM 소녀’가 아니라, 억눌린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논쟁성, 장난기, 도발성 속에서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에너지를 읽어낸 것이다. 때문에 케이티 페리를 향한 그들의 선택은 충동이 아니라 통찰과 전략적 판단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케이티 페리의 1집 <One of the Boys> 싱글 'I Kissed a Girl'은 파격적인 가사와 강렬한 캐릭터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압도적인 상업적 성과로 성공이 증명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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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CCM 가수 출신이라는 배경을 완전히 벗고 대담하고 도발적인 팝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팝 시장에서 드물던 여성 주도적, 자기표현적 이미지 확립했다. 이후 2집 Teenage Dream(2010) - California Gurls, Tennage Dream, Firework, E.T. - 에서도 폭발적 성공을 거두며 커리어의 정점을 이룬다. 앨범 3집 Prism(2013) - Roar, Dark Horse- 도 이전에 비해서 상업적 파워는 다소 완만해졌지만 히트를 했고 케이티 페리의 자기 주도적인 이미지를 공고화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Super Bowl Halftime show 2015)를 통해 퍼포머로서의 정점을 확인함은 물론이다.

image.png <Super Bowl XLIX Halftime Show 첫 곡 - Roar>
image.png <Super Bowl XLIX - Teenage Dream>
image.png <Super Bowl XLIX Halftime Show 마지막 곡 - Firework>


케이티 페리의 변화는 변신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컨셉을 바꾼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되도록 허락받은 것이다. (역시 사람은 결국 타고난 대로 살아야 일이 된다.)


Crumbs

(*1) 코러스 가사는 꽤나 도발적이다.

I kissed a girl and I liked it / The taste of her cherry chapstic

I kissed a girl just to try it / I hope my boyfriend don't mind it

It felt so wrong / It felt so right

Don't mean I'm in love tonight / I kissed a girl and I liked it


(*2) 알라배마, 미시시피, 아칸소처럼 보수적 기독교 성향의 전형적인 Bible Belt주(州) 출신일 것 같지만, 의외로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인근에서 태어났다.


(*3) 그녀가 한때 숨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본모습을 그들은 과연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어떤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순간에 그것이 단서처럼 드러났던걸까. 누군가는 그 미세한 기류를 놓치지 않고 눈치 챈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너머에 잠재된 가능성을 읽고 대중음악 시장에서 충분한 승산을 가진 자질이라고 판단했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방향을 잡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늘 숨어있는 공신들이 있고 그들은 대개 무대 밖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한다. 가수가 아닌 배우의 경우에도 작품을 찍는 동안 감독과 무수한 대화를 거치며 배역에 맞게 자신을 조금씩 조율해 나간다. 수상 소감이나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제 안에 있던 ~한 부분을 잘 이끌어내 주셨다”는 말이 유독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보면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기획자의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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