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NEM - May Never Be Another
나는 에미넴(*1)을 두고 가슴이 벅차오른 적은 없었다. 방에 포스터를 붙여 놓거나, 앨범 연대기를 줄줄 읊는 팬도 아니고 그의 이름을 들었다고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디선가 에미넴이라는 이름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에미넴?” 하고 주의를 돌리게 된다. 이건 대체 뭐람.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던 시절을 통과하며 나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와 동네가 바뀌자 친구들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모두가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던 때였다. 그 무렵에는 음악 취향이 거의 정체성과 같았다. 어떤 노래를 알고 있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어떤 뮤직비디오를 봤는지가 곧 ‘나’였다. 그리고 매년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는 필수 시청 목록이었다. 그래야 동성애 혐오자(Homophobia)로 알려져있던 에미넴이 엘튼 존(그는 동성애자이다)과 같은 무대에 올라, 공연이 끝난 뒤 포옹까지 나누는 장면을 봤냐며 다음 날 학교에서 호들갑스럽게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재미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음악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핫(hot)’한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MTV를 습관처럼 틀어 두던 시절, 존재 자체로 센세이션이던 에미넴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이름이었다.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 Will the real Slim Shady please stand up I repeat, Will the real Slim Shady please stand up we're gonna have a problem here.”(*2)
정신병원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간호사가 환자 이름을 부르던 그 도입부는 지금도 생생하다. (에미넴은 환자로 등장한다.) 내가 이전까지 보아온 어떤 뮤직비디오와도 달랐다. 어딘가 저질스러운데, 그렇다고 B급으로 치부하기에는 철저하게 연출된 화면으로 보였다. 그 시절 나는 나름 영어를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첫 멘트가 지나가자마자 말이 들리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세계가 펼쳐졌다. A4용지에 가사를 출력해 보니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훨씬 많았다. 하얀건 종이요 검은건 알파벳이라는 사실이 꽤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낯섦이 나를 물러서게 하지는 않았다.(금발에 준수한 외모의 백인이었던 점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오히려 나를 붙잡았고 결국 가사를 억지로 외웠다. 정말 말 그대로 억지로.
당시 화면 속 에미넴은 우리가 알던 어떤 팝스타와도 달랐다. 백인 남자가 랩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질적이었는데, 그는 흑인 래퍼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 때로는 더 날카롭게, 더 공격적으로 말을 쏟아냈고, 그 모든 가사를 무서울 만큼 제것으로 소화했다. 수십년 째 세상과 전쟁을 치루고있는 반항아 같으면서도 묘하게 정제된 인상, 코미디와 폭력성, 자기비하가 뒤섞인 뮤직비디오들. 존재 자체가 장르이자 문화적 충격이었다.
에미넴의 랩은 먼저 구조적으로 들리게 된다. 흐트러지지 않는 호흡, 짧은 시간에 많은 단어를 소화해내면서도 정확한 발음, 그리고 라임을 쌓아 올리는 방식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자기혐오와 분노, 조롱과 유머 같은 감정들이 흩어지지 않은 채, 정확한 언어와 리듬 안으로 밀어 넣어진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 없이 밀어 넣다 보니, 그 안에는 꾸며지지 않은 진짜 감정이 기본처럼 깔려 있다. 계산된 연출이라기보다는, 더 없을 솔직함 자체가 음악의 바탕이 되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훈련과 재능, 그리고 어떤 종류의 강박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진다. 그의 노래는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음악이라기보다,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혈관부터 반응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을 대표하는 래퍼인 그에게서 설명하기 어려운 절박함과 ‘한(限)’의 정서가 느껴진다.
<Lose yourself> 中
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
The moment, you own it, you better never let it go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This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yo
그의 삶을 알게 되며 또 다른 충격을 받았는데 한 사람이 겪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상상 이상으로 불행한 어린시절이었다.
그는 미주리주에서 태어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3)로 이주했고, 빈민가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가 한 살쯤 되었을 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 역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린 어미님을 향한 육체적, 정신적 학대가 이어졌고, 마약 문제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극심한 학교폭력에 시달려 집단 구타로 일주일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끝내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난다.그가 스스로를 ‘White Trash’이라 불렀던 말은 자조이자 사실에 가까웠다. 가장 좋아하고 의지하던 외삼촌의 자살, 딸 헤일리(Hailie Jade Mathers) 의 엄마인 킴(Kimberly Anne Scott)과의 결혼과 이혼, 재결합과 또다시 반복된 이별.(이런 애증의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4)
끝없이 이어지는 갈등 속에서 그의 삶에는 평범하다고 부를 만한 구간이 거의 없다. 파고 또 파도 끝이 나지 않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라기보다 소설 몇 권을 동시에 펼쳐 읽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완전히 무너진 사람의 인상은 받지 않았다.
혼탁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고 버텨낸 사람. 강함과 취약함, 공격성과 유머가 복잡하게 얽힌 그 모순이 결국 ‘에미넴’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자칫 범죄나 인생의 어두운 길로 빠질 수도 있었던 에미넴을 붙잡아 준 존재가 딸 헤일리(*5)였다는 점은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을 만큼 분명하다. 어느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는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헤일리, 네가 가지고 놀 장난감이 하나 더 생겼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삶을 버티게 한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상을 받을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소감을 이렇게 전달했다.
“I wanna thank my little girl. Without her, I wouldn’t be here right now. Thank you, baby. Daddy loves you.”
에미넴의 여러 노래 속에는 딸 헤일리를 향한 절절한 부성애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Mockingbird> 中
Hailie, I know you miss your mom and I know you miss your dad
When I'm gone, but I'm tryna give you the life that I never had
I can see you're sad, even when you smile, even when you laugh
I can see it in your eyes, deep inside you want to cry
'Cause you're scared, I ain't there?
Daddy's with you in your prayers
No more cryin', wipe them tears
Daddy's here, no more nightmares
..(중략)..
Daddy's gonna buy you a mockingbird
I'ma give you the world
I'ma buy a diamond ring for you
I'ma sing for you
I'll do anything for you to see you smile
And if that mockingbird don't sing and that ring don't shine
I'ma break that birdie's neck
<Hailie's Song> 中
Hailie, remember when I said
If you ever need anything, daddy would be right there?
Guess what? Daddy's here
And I ain't goin' nowhere baby
I love you
그의 감정은 장식처럼 붙어 있는 설정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우러난 처절한 고백에 가깝다.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부서지고 또 부서진 가정, 정상이라 부르기 어려운 부모 아래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보호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질문은 들여다볼수록 묵직해진다. 그의 삶은 여러 번 무너졌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겪었던 빈곤과 폭력과 결핍을 딸에게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고통스럽게 애썼다는 점에서 나온다. 최종 학력이 중졸이기에 딸을 키우며 공부를 직접 가르쳐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는 짧은 가방끈을 진심으로 후회했다고 한다. 그 후회에는 체면도, 포장도 없었다. 늦게서야 깨달은 어떤 책임감, 그리고 끝내 놓치고 싶지 않았던 보호자의 자리만이 남아 있었다.
어느 방송에서 공개된 그의 비밀 상자 안에는 찢어진 메모지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단어와 문장, 미완의 가사들이 무질서하게 적힌 종이들. 그는 이 메모들을 ‘Ammo(Ammunition Memo)’, '즉 탄창 메모'라고 불렀다.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에게 총알이 필요하듯,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에게도 준비된 말들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 Ammo memo들은 생각날 때마다 적어 모아둔 순간적인 영감의 흔적이었고, 그의 랩 뒤에 켜켜이 쌓여 있던 시간과 준비의 증거였다.
물론 그의 삶은 랩의 소재로 쓰기에도 넘치게 거칠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를 중퇴했을 뿐 모국어(영어)를 못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어 과목을 유독 잘했고, 사전을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다고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라임을 맞추기 위해 단어를 고르는 일에 집중했고, 발음 하나, 음절하나, 억양 하나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의 랩이 정확하고 빠르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인생이 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인생을 언어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산전수전 공중을 다 겪은 삶이 소재를 준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소재를 음악으로 완성시킨 것은 타고난 불운이 아니라 끈질기게 단어를 공부하고 문장을 다듬어온 집요함이었다. 그의 랩이 강력한 이유는 사자후처럼 쏟아내기 전에, 더 길고 깊은 침묵 속에서 준비해 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6)
한때 랩으로 전세계를 호령하던 인물은 이제 고향 디트로이트에서 스파게티 식당(Mom's Spaghetti)(*7)을 운영한다.
그러고보면 인생이란 참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소란과 논란, 분노와 찬사를 모두 지나온 끝에 그는 어쩌면 가장 평범한 삶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니 말이다. 에미넴을 떠올릴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경외나 향수라기보다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이해에 가깝다. 열정적인 팬까지는 아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의 음악은 내게 본능적인 감정의 전달이었고, 동시에 한 인간이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여정이자 성장의 기록이었다.
구글 평점은 4.4. 맛은 누구나 상상 가능한 평범한 토마토 스파게티라고 한다. 대신 가격은 저렴하고 양은 넉넉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인지 그 식당은 ‘미식의 성지’라기보다, 동네 사람들과 팬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장소에 가깝다. 에미넴의 스파게티 식당이 앞으로도 20년, 30년 동안 디트로이트의 한 지역 명소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Crumbs
(*1) 그의 본명은 Marshall Bruce Mathers III다. 이름의 앞글자 M 두 개, Marshall Mathers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M&M, 그리고 그것을 다시 알파벳으로 옮긴 것이 EMINEM이다.
(*2) <The Real Slim Shady> 뮤직비디오에서 에미넴은 버거킹 아르바이트생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유명한 사이드 메뉴인 '어니언 링'에 침을 뱉는 장면이 나온다. 하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근처에 버거킹이 있었고(지금도 있다), 미국적인 인테리어가 좋아서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사이드 메뉴가 '어니언 링'이었는데, 그 장면 이후로 한동안은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보면 아무일도 아닌데,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영향을 받았을까 싶다 ㅋㅋ (‘Slim Shady’는 랩을 할 때 에미넴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자아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부캐’에 가깝다.)
(*3) 미시간 주는 한 때 제조업으로 번성했지만 산업 쇠퇴로 경제 침체와 인구 감소를 겪게된 미국 중서부.북동부 공업지대(러스트 벨트 Rust belt)중 한 곳이다.
(*4) 젊은 시절의 에미넴과 킴
(*5) 헤일리는 에미넴에게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준 마지막 이유였다.
(*6) CNN의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와의 인터뷰에서 에미넴은 자신의 라임 방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영어에서 라임을 만들기 어렵다고 흔히 여겨지는 ‘orange’라는 단어를 앤더슨 쿠퍼가 제시하자, 에미넴은 곧바로 four-inch, door hinge 같은 표현으로 연결했다. 그는 단어를 음절(syllable) 단위로 쪼개 또렷하게 발음하며(enunciate) 라임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그저 감탄이 나왔다.
(*7)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던 아들이 차린 레스토랑의 이름이 하필이면 Mom’s Spaghetti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에미넴의 노래 <Lose Yourself>에는 실제로 Mom’s spaghetti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그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레스토랑의 개업식 날, 에미넴은 팬들과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포즈는 팬의 요청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