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구나!
일주일간의 적응기간을 마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고형연료(SRF)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열병합발전건설 중 탈황·탈질설비의 설계, 시공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엔지니어로서 입문하며, 항상 꿈꿔오던 프로젝트였다.
나로서는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었다.
약간 긴장되기도, 흥분되기도 하였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처음 맡게 된 탈황·탈질설비 용어, 공정, 설비 그 어느 것 하나 생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치 신입사원이 된 듯하다, 큰일이다!
도망칠까, 도망친다면 어디로, 갈 곳은 있고?
고민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 못 들고 뒤척거리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보낼 수만은 없다.
대책이 필요하다.
책에서, 강의 교안에서, 유사한 프로젝트에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본다.
필요한 것은 메모하고, 선배에게, 동료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아본다.
지루할 정도로 느리다, 제자리걸음이다.
나 스스로를 믿고 기다려보자!
낙수가 바위를 뚫듯 지루하지만 기다려보자!
한 달여가 지났을까?
안개가 걷히며, 희뿌옇게 무언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아, 이것과 이것, 저것과 저것이 서로 연관되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뭔가, 어렴풋이 서로의 연결고리들이 보이며, 잔뜩 엉켜있던 매듭이 풀리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이맘때쯤이었을까?
기초 설계를 마무리하기 위한 회의가 수시로 있었다.
서울에서, 원주에서, 대전에서
빡빡한 일정, 낯선 환경, 새로운 도전으로 인한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입술이 부르트고, 갈라지기도, 눈이 따갑고 시리기도
이곳저곳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잠시 쉬어야 하나?
10년여를 쉼 없이 달려왔음에도, 아무 문제없었는데,
10년여를 쉼 없이 달려왔기에 문제가 생긴 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지럽다.
어지러워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갑자기 어지럽다, 눈앞이 핑 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위가 조용하다. 여기는 어디지?
조심스레 눈을 떠본다.
김영주부장, 윤영석차장이 보인다.
“여기 어디, 저 왜 이러고 있어요?”
“너 사무실에서 쓰러졌잖아, 기억 안 나?”
윤영석 차장이다.
윤 차장과 나는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
“그래, 여기는 어디야?”
“병원이지, 너 며칠을 안 잔 거야? 혈압이랑 몇 가지만 확인했는데 참!“
“야, 오늘 회의 있는데, 서울에서”
“김차장, 회의가 걱정이야? 상무님 가셨어, 걱정 하지마“
옆에 있던 김부장이 거들고 나선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뭐가 죄송해, 동기라고 둘밖에 없는데 무슨 큰일 나는 줄 알았네,
상무님이 3일 쉬었다 출근하라 하시니 그렇게 해“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부장은 내가 깨어나는 걸 보고 회사로 향했고, 윤차장은 수액 맞으면 집에 데려다주겠다 했다.
“야, 들어가 수액 다 맞고 택시 타고 갈게”
“너, 택시에서 쓰러지면 더 민폐야, 내 차로 가”
윤차장의 말을 들으니 출근해 자리에 앉자마자 쿵하고 쓰러졌다 했다.
노트북을 펼친 줄 알았는데 꿈이었나 보다. 하하
1시간쯤 지났을까 수액을 다 맞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쉬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듣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