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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익숙하지 못한 처음은 있다.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꿈꾸며

by 갬성장인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때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대학 4년, 스물여섯 해 어느 날

졸업 전 취업을 하였고, 그 이후 단 하루 쉬어본 적이 없었던 나였다.

그렇게 십수 년을 쉼 없이 보냈다.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백수가 되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 늦은 저녁 잠드는 순간까지

아니, 내가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것 같았다.

당장, 아침, 점심, 저녁끼니, 도서관까지 교통비, 휴대전화 충전, 아파트 관리비 등등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퇴사하며, 받은 퇴직금과 그간 모아두었던 약간의 ‘돈’이 있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백수생활을 버틸 수 있을지

언제까지 걱정만 하여 지낼 수는 없었기에 하나하나 따져본다.

아침, 점심, 저녁끼니 등

나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나열하고 나니, 나머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는 절전모드로, 불필요한 모바일 인터넷 사용은 자제

사용 빈도가 낮은 정기 구독서비스 해제,

도서관은 대중교통, 점심, 저녁은 도시락으로


당시의 나에게 도서관은 안식처이나 치유의 공간이었다.

자격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고,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불편할 때면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잠시 나가 산책을 했다.

화사한 햇살아래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답답한 나를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그렇게나마 막연한 불안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언제까지 이렇게 보내야 할까,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수많은 잡념들이 나를 좀먹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할 때쯤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온다.


“당신이 싫어하는지 아는데, 간만에 바람도 쐴 겸 나랑 어디 다녀올래?”

“어디?”

“경기 안산”

“안산?”

“어, 안산에 유명한 아기보살이 있다 해서, 예전에 유명 연예인 앞날을 예언했던”

“허허”

“싫어, 싫으면 안 가도 돼, 당신이 답답해하기에”

“가자, 바람도 쐴 겸 속는 셈 치고”


아내의 뚱딴지같은 제안에 못 이기는 셈 점(占)이란 것을 보러 가기로 했다.

난생처음 점을 보러 가려니 기분이 묘하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싶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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