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 없는 월요일

세상에, 제가 월요병 없는 월요일을 맞이했습니다. 언제까지 갈까요?

by 갬성장인

4월 한켠의 어느 월요일,

지난주까지도 필 듯, 피지 않아 애를 태우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제 벚꽃 잎을 흩뿌리며, 꽃비가 내리고 있으니,

한 주의 새로운 시작인 월요일, 다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지만 나의 오늘만큼은 한가롭다.

오늘은 나의 휴가 중 하루이기에


휴가인 줄 알지만 휴대전화의 알람은 꺼두지 않았다.

그리 유난 떨고 싶지도, 늦잠을 자며 소중한 하루를 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기지개를 켜고, 집 앞 골목길을 걸었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벚꽃 잎을 흩뿌리고 있었다.

지난주까지 필 듯, 필듯하며, 피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다.

(물론, 내가 애를 태운다고 필 벚꽃은 아니겠지만)

골목은 벚꽃의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어 있고, 월요일이라 그런 것인지, 바쁜 아침시간이라 그런 것인지 바삐 오고 가는 이들로 분주하다.

나 홀로 한가로이 골목을 거닐며, 온갖 참견을 하고 있는 듯하다.

벚꽃이 피었네, 꽃잎이 흩날리네, 좀처럼 나의 참견을 멈추지 못했다.

모처럼의 휴가이기에, 새로운 참견을 위해 오늘은 저 언덕너머까지 가본다.


올 초 새로운 곳으로 발령받아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4개월이 되었다.

여유를 가지고 지내야지, 다른 이들과도 교류하며 지내야지라던 그간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4개월이라는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여유를 가지고 지낼 것을, 다른 이들과 교류하며 지낼 것을 다짐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는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일중독자였다.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이 같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일에 파묻혀 살다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정도로 나는 참 미련하였다.

그 덕분에 3개월이라는 시간을 쉬었고, 그 시간은 나에게 참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아마 그 선물 같은 시간 동안 쉬는 것도, 주위를 돌아보는 것도,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화살처럼 지나간 4개월의 보상을 위해서 오늘 하루 나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었다.


전주 실적, 금주 계획, 주간 업무 회의 등등 예전 같았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 나의 시간이 일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리고 나 하나쯤, 하루정도 없다 하여 잘될 일이 잘못되고, 흥할 일이 흥하지 못하는 일은 없으니까 뒤늦은 깨달음이었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정말 다행이 아닌가 싶다.

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후 나에게 월요병은 사라졌다.

월요일도 일상의 하루이고, 수많은 나의 시간 중 일부분일 뿐이기에 그리 긴장할 것도, 그리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다만 오늘처럼 휴가일 때는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나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참견을, 소소한 일상의 변화에 대한 참견을, 그리고 변해가고 있는 나에 대한 참견을 즐겼으면 한다.

앞으로 쭉 나에게 월요병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 찾아오더라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참견으로, 소소한 일상의 변화에 대한 참견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에 대한 참견으로 이겨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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