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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갬성장인 Apr 20. 2024

나는 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야!

다른 이에게 잘할 필요까지야 없지만, 그렇게 적대적일 필요가 있을까?

근래 별것 아닌 듯 하지만 나름 신경 쓰이는 일들이 참 많다.

매년 모든 회사는 신년이 되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목표와 계획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 목표와 계획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가 달성하여야 하는 목표이며,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는 소명이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이지만 나의 직무는 안전관리이다.

흔히 말하는 기업의 안전관리자로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의 직업적 소명이다.

'너무 거창한가?'

뭐, 어쨌든 나는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

더불어 요즘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함께 강조되고 있는 시기이다.

내가 서두를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은 나의 직무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서로 맞물려 수많은 사원들 중 한 명에 불가한 내가 나름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잘 알려진 중대재해처벌등에 관한 법률의 확대 적용과 원하청관계의 책임론과 맞물려 사내에서는 안전보건실태점검을 하고 있다.

안전보건실태점검 실시를 공유받은 나는, 뭐 그리 어려울 일이 있으랴 싶었다.

관계 법령에도 해당 내용과 근거가 명시되어 있기에 거의 모든 담당자들은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도와주었고, 함께 상의하며 나 또한 그네들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시선의 방향을, 시각의 차이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몇몇 곳은 나를 참 힘들게 한다 아니, 하고 있다.

'솔직히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끝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스럽다.'


"요즘 한창 언론에서도 보도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내 이러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왜요?"

"다시, 설명드리면 이러이러한 부분들을"

"나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잘 모르겠네?"

나의 말은 항상 끝맺음을 맺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못 할 것이다. 들으려 하지 않으니

그러던 중 오늘에서야 연락이 왔다.

'오늘은 휴일이다.'

"아, 그러니까 그거 언제까지죠? 중대재해처벌법인가 뭔가 때문에 해야 된다는 거"

"원래 OO월 OO일까지입니다."

"아, 그런데 왜 해야 된다고요? 우리만 하나요? 왜 하필 우리죠? 이야기하신 법은 뭐라고요?"

요청한 기안이 넘었음에도, 휴일임에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밀려오는 짜증스러움을 간신히 참고 설명을 해주었다.

"아,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네,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여태껏 누구에게 설명을 하고, 누구와 이야기를 한 거지'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를 적대시하는 이는 없는 편이라 최선을 다하여 친절하게 대하고자 한다.

안전관리를 담당하면서

"바쁜 현장에서 안전, 보건, 법령 뭐 이러저러한 거 다 따져가며 일하려면, 일하지 말아야지 뭐"

흔히 들었던 이야기들이라 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전 직장도 언론 보도내용을 빌리면 '강성노조'로 분류되던 곳이어서 하하하

그렇지만 '강성노조'라 불리던 그네들도

"이러이러한 것들을 찾아 바로잡고자 합니다." "제가 뭐가 위험한지 알아야 답도 찾고 해결도 하죠?"라 하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뭐, 다들 입장의 차이란 것이 있고, 역할이란 것이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은 다른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냥 나와 마주 앉은 이는 '내'가 싫은 것으로 '내'가 싫으니 '내'가 하는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이고, 마주 앉아있는 자체가 거북한 것이라고

내가 그에게 훈수할 이유는 없지만 마음속의 한마디를 남긴다면

"나는 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야!"라 해주고 싶다.

실은 그가 어찌 남은 삶을 살아가던 그다지 관심 없다. 뭐, 솔직히 속된 말로 내 알바도 아닌지라 허허허

더불어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그런 곤욕을 치르는 이가 '나'이기에 다행이다.

아직까지 후배들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정겨운 이들로 가득 차 있다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아름답고, 정겨운 이들로 가득 차 있다.

가끔씩 돌연변이 같은 이들이 다른 이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업수히 여기려고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난다면 불쌍히 여기고 말면 될 뿐이다.

어찌 되었든 그다지 말을 썩고 싶지 않은 이와 나름 '협업'이란 걸 하면서 잘 마무리 짓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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