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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갬성장인 May 11. 2024

이것이 사내정치일까?

사내정치는 필요 '악'인가, 그냥 '악'인가?

 19년 차 직장인으로 조직 내 보이지 않는 다툼이 없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그에 걸맞은 보이지 않는 다툼, 즉 사내정치가 있기 마련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셋 이상이 모이면 의견이 나뉘기 마련이고, 더군다나 지위와 권한이 부여되는 회사라는 조직이라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복잡한 셈이 존재하기 마련일 테니.

자신과 생각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는 원만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고, 이 부류에서 누군가 힘을 얻는다면 그 혹은 그녀를 중심으로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부류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간다면 조직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지위와 권한을 등에 업고 폐단만 일삼다 자멸할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빗대어 볼 때 불행하게도 힘을 얻은 부류가 조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본 적은 극히 드물었으니, 아니 없었다 해야 하나?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도 보이지 않는 분란으로 몸살을 알고 있다.

"OOO이 OOO으로 간다고 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반대 의견을 내놓은 바람에 좌천된 거라 합니다."

"이번 조직개편에 OOO 팀이 생긴다 하는데 팀리더가 OOO 상무와 이러저러한 사이라 합니다."

"이번에 OOO 팀 리더는 리더를 내려놓는다고 하시는데 이번에 그 팀으로 발령받은 OOO이 차기 팀리더라고 합니다."

"지난달에 OOO가 그만두었는데, OOO팀리더와 분란이 있어 정리된 거라 합니다."

이 중 분명한 사실도, 억측도 있을 것이다.

'호사가들의 이야기들을 다 믿을 수 없겠지만 다 틀렸다 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이 불편한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고고한 학처럼 홀로 서있기를 원함도, 차디찬 겨울에 홀로 푸르름을 뽐내는 소나무 같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투성이인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을 뿐


아마, 직장 생활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사내정치'와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 잘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어 다음 희생양이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나에게 많은 이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손 내밀 때 잡을 줄 아는 것도, 물들어 올 때 노 젓는 것도 능력이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가끔씩 먼저 연락도 하고 의견도 구하고 하는 거야, 아부하라는 말이 아니잖아"

"너 보면 참 답답하다. 이리 살아서 네가 얻는 게 뭐니?"

나 역시 평가에 대한 욕심, 진급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부류에 속하여 힘을 가진 그 혹은 그녀의 뜻에 따라 의미 없이 흔들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 의미 없는 흔들림이 싫어서 평가, 진급을 내려놓았을 뿐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투성이인 싸움에 휘말려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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