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과 새로운 3년
진호형이 합류하고 자홍이라는 친구가 새롭게 합류했다.
나랑 동갑내기에 대구에서는 그나마 규모가 있는 회사에 2년 정도 근무 하였다 했다.
‘환경 관련 시설을 설계, 시공하는 회사들은 규모가 있다고 하여도 30명 남짓의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자홍이가 근무한 곳은 대구 내에서는 매출 규모로
보면 2~3위 정도 되었다. 연간 매출 120억 원, 근무인원 약 40명 정도라 했으니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곳이 연간 매출 7~8억 원, 근무인원 5명이었으니
대략적인 비교가 될 듯하다.‘
자홍이는 설계, 시공보다는 신고, 허가에 능하였다. 우리는 동갑이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굉장히 빨리 친해졌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자홍이를 통하여 다른 곳의 일하는 방법 등을 전해 들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기도 배우기도, 때론 함께 찾아보기도 하며 해결하였다.
아마 자홍이와 지내며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3년의 시간보다 훨씬 값지게 느껴졌던 것은 물어보기도 배우기도 하며, 때론 함께 찾아보기도 하며 서서히 쌓여온 내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자홍이는 나에게 친한 친구였고, 선배였다.
당시 회사의 모습은 참으로 의아했다.
대표는 영업한다는 핑계로 오전에는 나오지 않았고, 오후 늦은 시간에 나와서는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때로는 친구들을 부르기도, 어떨 때는 거래처 대표들이 찾아오기도, 혹은 일하고 있던 우리와도
나는 의아했고, 이건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쯤 동생이 취준(취업준비)으로 한창 면접이다, 인턴이다 등등을 하고 있어 전화도 자주 하고 서로의 안부에 대해서도 곧잘 물어보았다.
물론 동생이 목표로 하고 있던 곳과 내가 몸담고 있던 곳은 규모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차이가 컸다.
하지만 회사는 기본적인 규칙이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
더불어 당시 내수 경기가 좋지 않아 수주 또한 잘되지 않고 있었다.
대표는 항상 회사가 너무 어렵다. 회사가 내일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오후 늦은 시간만 되면 어느 어느 막걸리가 맛있는 것 같다. 어느 어느 곳에 무엇 무엇이 맛있다. 등등 이해하지 못할 말들만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 준비를 해야 했고, 이직을 위하여 입사지원서를 내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대구지역에서는 그나마 규모를 갖추고 있다는 곳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김정우 님! 저희 면접을 보려고 하는데 시간이 언제쯤 되실까요?"
"예, 금주 토요일은 어떨까요?"
"예, 그럼 금주 토요일이라면 오후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예, 죄송하지만 재직 중이어서요"
"예, 알겠습니다. 저희는 토요일 근무가 오후 3시까지이니 오후 2시까지는 오실 수 있을까요?"
"예"
"예, 그럼 금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뵙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면접이 잡혔다.
이직을 위한 첫 면접이다.
‘당시에는 토요일까지 근무하였고,
보통 오전근무를 하였으나 조금 더 근무하는 곳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후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