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제야, 나의 위치와 상황이 보였다.

신은 쉽사리 곁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항상 그러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by 갬성장인

화재가 난 이후의 주말은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지워버리고 싶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화재 이후 처음 맞는 월요일이다.

아침 일찍 나의 휴대전화가 요란하다.

"예, 정우입니다."

간략하고 짧은 대답에 수화기 너머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강주소방서 화재조사관 병우입니다.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한 내용들이 있어서요. 현장 방문 가능할까요?"

아, 짧은 탄식과 함께 뭐라고 답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 그날 나의 근무는 야간이었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시헌마저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여 주고 있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였다.

그러할진대, 사업장에서 불까지 났다.


이미 온몸에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져있었고, 주말조차 경찰 조사로 보내버려 숨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지란 없었기에

"예, 가능합니다. 방문 시간을 대략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모르는 희망감을 가지고 방문 시간을 확인했다.

역시나, 당시의 나에게는 작은 행운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전 10시 방문 예정입니다.

화재조사와 함께 지난주 현장 출동 당시 현장을 지휘하셨던 팀장님도 함께 방문하고자 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짧게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화재조사관의 방문은 예상했지만, 당시 출동하였던 지휘팀장의 방문은 예상치 못하였다.

아마 화재 당일 잘못된 안내로 현장 출동에 혼선이 있었다 들었다.

아마 그에 따른 우려 썩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했다.

아직 어수선하다.

주간 선임자에게 간략히 내용을 설명하고 시설팀 소방담당자들에게도 관련 내용 공유와 조사 준비를 하게끔 했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듯 멀뚱히 서있는 시헌을 뒤로하고, 빠르게 현장 및 시설팀 사무실을 찾았고 화재 조사관과 달갑지 않은 방문자들에게 혹시 트집 잡힐 일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었다.

또 한 번의 요란스러운 휴대전화 소리와 함께 화재조사관은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화재조사는 거의 오후가 다 되어서 끝났고 배고픔은 잊은 지 오래였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상대응 훈련의 일환이었던 피난대피훈련

대상자만 900명이 넘는 대규모 피난대피훈련이 고작 열흘도 남지 않았다.

그렇지, 여태껏 나는 피난 대피훈련을 준비하고 있었지, 머리를 크고 무거운 해머로 맞은 듯했다.

무작정 호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순간적으로 호운이 떠올랐다.

호운은 내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후배 중 하나이다.

아니 가장 신뢰하는 녀석이고, 거의 모든 것을 녀석과 상의해서 결정 지었을 정도였다.

아마, 시헌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내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호운이 있어야 한다 했을지 모를 일이다.


호운에게 간략히 사정을 이야기하고 화재 조사 등의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있지만 문제는 열흘도 채 남지 않은 피난대피훈련임을 이야기했다.

눈치 빠른 호운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라는 호운의 간결한 대답을 듣고도 안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당시의 나는 그러했고, 그리했어야 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호운이 흔쾌히 도와주겠다 해서


하지만 훗날 호운은 오늘의 결정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지 못했으리라,

훗날, 녀석에게 당시 어떠했는지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형님,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그리 해야 한다는 듯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여지를 두시는 형님이셨기에 이번은 연유를 여쭈지 않아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불이 났을 때 어떤 결정을 하셨고, 어떻게 하셨는지 선배들께 들었습니다.

한 번쯤은 형님이 저에게 늘 그리하셨던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녀석의 대답을 듣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 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