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불행이라 했던가?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마저 나에게 사치였다.

by 갬성장인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마저 나에게 사치였다.

어느 해 7월, 나에게 새로운 변곡점은 항상 7월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바보스러운 것 같다.

7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시간쯤이었던 것 같다.

'아, 오늘만 지나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주말이다.'

당시 무척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금요일은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다.

이틀을 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정말 소중하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퇴근을 몇 시간 남기고 갑작스레 성철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 이사진은 뭐지?"

성철이 휴대전화를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성철이 재빨리 통화를 마치고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는다.

"정우님, 지상 3층 외곽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고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는데 예감이 좋지 못합니다.

같이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뭐지? 무슨 일이지?'

지상 3층이라면 여러 가지 잡화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의류, 가전제품, 생활필수품 등 불이 쉽게 옮겨 붙을 수 있는 물품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철과 지상 3층으로 내달렸다.

아뿔싸! 지상 3층은 보안구역으로 우리가 임의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 층 위인 지상 4층으로 우리는 다시 내쳐 달렸다.


훗날, 성철과 그날을 회상할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정우님 우리 정말 빠르지 않았아요. 흐흐흐"

성철은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실없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뭐, 어찌 되었건, 사실이지 않은가,

당시 우리는 누구보다 빨랐고, 전력을 다하여 내달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상 4층, 뒤늦게 살펴본 지상 3층 그 어느 곳에도 화재의 흔적은 없었다.

"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버렸다.

성철도 내 옆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 순간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다.

"정우야! 어디니?"

"예, 지상 4층에 있다가 지금 3층에 있습니다.

화재 흔적은 없습니다."

"정우야! 불이 난 곳은 3층도 4층도 아니야!

지하 1층에서 불이 났고, 지금 큰 불은 껐고 잔불 정리 중이야,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 이리 서둘러 와야 될 것 같다. 내 말 듣고 있니?"

"예,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사업장 전반의 운영과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헌철이다.


평소 헌철은 침착하고 명확한 성격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배울 것이 많은 선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날은 몹시 서둘렀고 상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침착한 헌철도 처음 겪는 화재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서둘러 지하 1층으로 내려오니 검댕을 잔뜩 뒤집어쓰고 잔불을 정리하고 있던 헌철과 몇몇이 보인다.

헌철의 말대로 잔불정리 중이었다.

"가스는? 가스는?"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시설팀 근무자에게 가스 차단여부를 다그치듯 물었다.

대답이 없다.

막무가내로 가스 차단시설로 뛰었다.

가스 차단시설은 차단되어 있었다.

다행히 가스 차단시설이 화재경보기와 함께 동작하게끔 설계되어 이미 화재경보가 발생되며, 차단시설은 동작하였던 것이다.

가스와 전기를 재차 확인하고 나오니 화난 얼굴로 헌철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붕괴 위험이 있는 화재 현장에, 더군다나 잔불 정리도 다 되지 않은 현장에 무작정 뛰어드는 녀석이

어디 있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불이 난 곳 인근에 도시가스 배관이 있었고, 불이 난 곳도 하필이면 조리실이었다.

하나 헌철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했다.

정리를 마치고 퇴근할 때쯤 내 꼴을 보니, 여기저기 그을려 있다.

아마 가스와 전기를 차단하려 뛰어들었을 때 불티가 붙었었나 보다.

이 일로 헌철을 비롯한 선배들에게 정말이지 엄청 혼났다.


가스와 전기를 확인하고 하니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과 시설을 관리하는 시설팀 근무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현장은 참담했고 암울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현장에 소방대원들은 도끼 등을 이용하여 천장을 무너뜨리고 잔불을 확인했다.

아, 불이 조금 더 컸다면,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했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그리 되었다면, 지금쯤 그날을 회상하며, 담담하게 이야기하지 못했겠지

소방대원들의 잔불 정리와 혹 있을지 모르는 2차 화재 위험에 대한 확인이 끝나고 나니 경찰이 도착했다.

간략하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인명피해는 없음을 알렸다.


아차, 헌철과 나는 상황 정리에 몰입한 나머지 초기 보고를 잊고 있었다.

나에게 이를 알려준 이는 헌철이었다.

"정우야!!! 우리 초기 보고 못한 것 같다.

정리해서 보고하고 수습할 일들은 보고 이후에 다시 상의해 보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시, 헌철은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침착함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간략한 사고 경위와 인명피해 없음을 보고하고 인원통제와 경찰 조사 등을 마치고 나니, 새벽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당연한 일일런지 모르겠다.

이제야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다.

영원히,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