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몇 해전 가을, 이것이 불행의 시작일 줄 몰랐다.
이 작은 변화가 불행의 서막이었으리라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by
갬성장인
Sep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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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의 도입부였던 7월, 그동안 애써 외면하려, 밀어내려고만 했던 결정을 했다.
어쩌면 나의 결정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나의 길고 지루한 고민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 모두 알고 있었고,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 홀로 애써 부정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몇 해전 나는 주위의 만류에도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자회사로 자청하여 자리를 옮겼다.
인수는 했지만 가려고 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 나름 골칫거리였는데, 가겠다고 하니 반색하며,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후회하지 않았냐
물었을 때 후회했다 답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십수 년간의 실적 부진으로 사내 분위기는 엉망이었고, 그간 반복되는 매각과 인수로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 회사였지만
그들만의 문화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다라는
희망은 있었다.
새로운 설비 투자와 연구 인력 지원을 약속하였기에 이제 해볼 만한 싸움이다라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렸고, 모두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싸움도 해보지 못한 채, 코로나라는 유래도 찾아보기 힘든 감염병 앞에 무너져 내렸다.
백신도, 치료법도 없던 감염병에 우리 물건을 살펴보겠다, 구매하겠다던 고객들은 발이 묶여 아무런 결정조차 하지 못하였고, 제품을 납품받던 회사들은 감염병 확산을 이유로 휴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저러한 사정들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고 함께 하던 이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회사는 실패한 인수 합병임을 인정하며, 더 이상의 투자는
불가하다 공표하였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또한 번의 매각을 거치며,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더 이상 회사에 남을 수 없었던 나는,
이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었고,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함께하던 선배가 다른 사업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선배와 나 그리고 다른 한 명, 우리 셋은 그리 잘 맞지도, 그렇다고 잘 안 맞지도 않는
각자의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아주 친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그런 ‘적당한’ 사이였다.
다양한 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며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긍정적이며, 재치가 넘치는 선배였기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의지가 되었는데,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내 나름의 방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걱정과 약간의 흥분 그리고 설렘이 함께하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배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하여 곧 충원되는 이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와 호흡을 맞추어 함께 해나간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때의 난 어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의 소유자였는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애송이의 무모한 자신감 정도였다 생각하자.’
드디어 새롭게 충원된다던 이의 첫 출근일이 되었다.
첫 출근을 한 시헌과의 만남은 어색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는 이전에 컨설팅사에 있었다고 한다.
컨설팅, 내가 경험한 컨설팅을 하였다는 이들은 실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그 반대였다.
전자이기를 바라며, 어색한 만남을 끝내고 간략한 인사와 사업장 소개를 시작했다.
우리 사업장은 대한민국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래, 대형 사업장에 실력 있고 솜씨 있는 이를 보내어 주었겠지, 미래의 불행을 짐작했던 것인지 자꾸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모두가 그렇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시헌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기다리자 나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애써 나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희망찬 기다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시헌은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었다.
앞에서는 이해했다, 알겠다며 나를 안심시켰으나, 뒤에서는 잘 모르겠다.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다.
왜? 자신에게 업무를
떠 넘기려 하는지 모르겠다 등등 수많은 험담을 쏟아내었고, 그 이야기들은 금세 나에게 전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알아가다 보면,
시간이 필요한 것일 거야라는 자조 썩인 위로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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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벗어나려
01
1.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벗어나려 글을 씁니다.
02
2. 몇 해전 가을, 이것이 불행의 시작일 줄 몰랐다.
03
3.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불행이라 했던가?
04
4. 이제야, 나의 위치와 상황이 보였다.
05
5. 조금씩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겨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벗어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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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벗어나려 글을 씁니다.
3.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불행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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