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은 항상 관대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만큼은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생각했는데, 정작 문제는 나였다.

by 갬성장인

호운과 여름이 척척 피난대피훈련을 준비하며, 여름은 연출자였던 것처럼, 호운은 촬영감독이었던 것처럼

최초, 최선, 최고가 되기 위한 준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맡고 있던 화재조사 또한 어느덧 마무리되고 있었다.

나 또한 호운과 여름이 고군분투하던 최초, 최선, 최고의 피난대피훈련 준비에 참여할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라 생각하며,

숨 가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900여 명이 참여하는 피난대피훈련의 준비다,

모든 것이 항상 순조로울 수 없었지만 그들은 문제를 발견함과 동시에 상의하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또한 화재 조사가 마무리되어 감에, 합류한 나를 내심 반겨주었다.

하지만 신은 항상 관대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그러했다.

당시 두 달여 정도를 화재조사로 시달리다 보니, 나는 피폐해져 있었다.

하루에 편안히 자는 시간은 두 시간도 되지 못하였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깼었다.

이웃이 다투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등등 그 어떤 소리에도 잠이 들면 깨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들던 나였다.

문제는 잠만이 아니었다.

순간순간 호흡이 멎는 듯했고,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며,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했다.

나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애써 감추려고 했고, 숨기려 했지만 서서히 주변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다시금 걱정을 끼치는 안타까운 이가 되어버렸다.

'그래, 피난대피훈련까지만 마무리하자, 화재조사만 종결짓자!'

이제 다 왔어 목적지가 눈앞이야, 정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정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나 홀로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 이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과 호운이 훈련 준비 진행사항을 이야기하며, 의견을 물어왔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연결되지 못했다.

아니 조금 더 자세하게 표현한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안 들렸다.

단어와 단어가 연결되어 문장이 되고,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어 문단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단어, 문장, 문단이 들리지도, 이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허공에 맴돌다 부서져버리는, 사라져 버리는 허상 같았다.

"제가 좀 생각이 복잡해서요.

죄송하지만 두 분이 상의하시고 헌철님께 보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훗날 정신건강의학과란 곳을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나는 불안, 강박, 우울 등을 동반한 소진증후군 즉 번아웃 증후군을 않고 있었고 그로 인한 극심한 우울과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괜찮아지는 듯,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 내 몫을 하는 듯했는데


희망을 속삭이다, 절망을 안겨 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신이라는 존재는

항상 관대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만큼은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생각했는데,

다 끝났다 생각했는데, 나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작 문제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