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있을 때 여러 명의
간호사와 의사가 나를 스쳐 갔다.
그중 가장 기억 남는 네 사람이 있다.
1
점심시간. 다른 간호사들은 모두 밥 먹으러 간다.
한 간호사는 가지 않고 어떤 환자 옆에 붙어있다.
동료 간호사가 “밥 먹으러 안 가?”라고 물어본다.
그랬더니 “오늘은 안 먹으려고.”라고 대답한다.
손길이 계속 필요한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돌본다.
환자를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희생했다.
2
또 다른 간호사 한 분은 환자인 내 입장에서
항상 이해하고 배려했다.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기 전에
나와 우리 부모님의 의견을 먼저 존중해주었다.
어떤 말을 해도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었다.
나에게 늘 따뜻하고 친절했다.
불편한 상황을 겪지 않도록
내가 요청하기 전에
미리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3
하루아침에 돌변한 간호사 한 분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차가웠다.
기계처럼 의무적으로 꼭 해야 할 일만 해주었다.
그날 밤사이에 내 피검사가 잘 나왔다.
이 결과가 간호사 실적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바로 다음 날 나에게 갑자기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
이름을 불러주면서 말을 걸고,
안 감겨주려던 머리도 감아주었다.
어제랑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4
중환자실에서 봤던 남자 의사 한 분도 기억난다.
‘저분은 억지로 의사가 되었나?
이 일이 하기 싫은가 보다’라고 느꼈다.
환자를 대충 대했다.
연락해도 잘 받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은
눈을 뜨고 움직이는 일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의 감각은 건강했을 때보다
더 예민하고 뚜렷해졌다.
마음의 눈이라도 작동시켜서
바깥과 계속 연결되고 싶었다.
눈으로 볼 때보다 마음으로 보려 할 때
보이지 않는 상대의 태도나 진심이
더 잘 느껴졌다.
마음으로 전달되는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내가 절박한 상황일수록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의사나 간호사의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는
위기의 순간에 있는 나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길 바랐다.
위에서 말한 남자 의사와 마주했을 때,
환자로서 마음이 괴롭고 슬펐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에 대한 진정성과 책임감이 왜 중요한지
다시금 터득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작은 일을 하더라도
내 진심이 가득한 일을 선택하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작가 칼릴 지브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은 사랑이 가시화된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혼을 불사르면 잠자던 영혼의 눈을 뜬다.
그 순간부터 돌연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쉬워지기 시작한다.”
내면의 부름에 따른 진정성의 힘은 강력하다.
진정성은 돈으로 사거나 평가할 수 없다.
AI 인공지능 로봇이 고도로 발달하는 시대가
다가올수록
‘사람다운 성질이 가득한 진정성’의 가치는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언제나 진정성을 원하고 찾는다.
직관적으로 이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충분히 안다.
나는 진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