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동생은 마음이 힘들어서
법륜스님의 강의를 유료로 듣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1인 사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불안하거나
흔들릴 때가 많다.
초반에 엄마와 나는 동생을 만날 때마다
‘요새 일이 어떤지’ 물어보곤 했다.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동생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걸 괴로워했다.
외적으로 일이 잘 풀리고 있어도
내적으로 꼭 편안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동생이 이룬 성과보다
동생의 존재 자체를 존중해주는 질문들을 던졌다.
이젠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묻는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이 뭐야? 힘든 일 없어?”
“요즘은 기분이 어때? 행복하다고 느껴?
아니면 불안해?”라고.
내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매일 마음 상태가 대체로 어떤지 등
동생의 마음을 궁금해했다.
내가 사랑하거나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의 고민이나 기분 상태를 물어본다.
구체적으로 ‘요즘 고민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또 ‘하루하루 기분이 어떤지,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상대의 외적인 면보다 내적인 면에 다가간다.
상대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무조건 공감해 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다.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마음이 어떤지 물어본다.
상대의 말과 표정, 행동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의 고민과 문제에 관심을 두고,
아픔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돌부리와 웅덩이를 만난다.
상대가 걸려 넘어진 걸림돌을 보려고 하는 마음은
막상 어려운 일이지만
상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생은 결국 관계다. 관계는 소통이다.
소통은 주변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다.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고
언급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라는 뜻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마음에 대한 이해와 반영이다.
계란 후라이처럼 나는 흰자고
상대는 노른자라고 생각한다.
노른자를 품고 있는 흰자같이
서로의 마음이 하나처럼 잘 섞이는지 본다.
문요한 저자는 책<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공감이 상대의 감정과
고통을 헤아리는 것이라면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은 더 나아가
상대의 흥미, 욕구, 생각, 재능, 행복, 미래 등
마음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헤아리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당신의 관심사, 행복, 미래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느낄 것 같은가?”
최근에 동생 생일이어서 만났다.
점심 먹고 잔잔한 호수 배경이 보이는
대형 카페에 가서 대화를 나눴다.
동생에게 “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동생의 답을 듣고 나서
“앞으로 넌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진짜로.”라고
응원해 주었다.
또 “지금 행복해?”라고 물었더니
동생은 “행복하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네가 행복하면 됐지! 뭘 더 바라.”라고
호응했다.
우리는 자신과 상대에게 외적으로 많은 걸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딱 하나다.
‘너와 내가 지금 진심으로 행복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