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하기 전에 나는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내가 싫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겼다.
내 안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터득했다.
내가 나를 미워했던 이유는 ‘나’라는 존재를
뚜렷하게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생에서 해야 할 의무는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나를 멀리서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자기 마음에
얼마나 드는가?’,
즉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자신 자신의 평가’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허지원 교수는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자존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로 유명한 심리학자
모리스 로젠 버그는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호의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라고 정의했습니다.
저는 자존감을 설명할 때면
로젠버그의 정의를 알려주되, 이렇게 덧붙입니다.
“계급장 다 떼고, 이른바 ‘스펙’ 하나 드러내지
않고서 다른 사람과 마주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곧 자존감입니다. ]
20대 때 내가 썼던 자기소개서를 보면
‘진짜 나’는 없다.
심지어 ‘나’를 드러내지 말고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 대해 전혀 몰랐다.
책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했다.
‘나’를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지금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완전함을
인지하는 것.
높은 자존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나는 항상 나보다 세상이, 타인이,
사건이 더 커 보였다.
책을 읽을수록 ‘나’라는 존재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나의 존재를 먼저 분명하게 세우니
인생, 세상, 타인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자기 삶이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없거나 작기 때문이다.
뇌는 부정적인 감정에 강한 반응을 보인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뇌의 부정 편향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실제보다
더 나쁘게 인식한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현실은
그만큼 엉망진창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과 타인이 요구하는 성공, 부, 직업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의 존재 가치까지 낮추면 안 된다.
사회가 원하는 외적인 요소들은
우리를 평가하는 수많은 잣대 중 하나일 뿐이다.
내 안에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는 적이 있으면,
내 밖을 둘러싼 외부의 적도 나를 함부로 해친다.
내가 나를 하찮게 깎아내리면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자기 자신을 다치게 만드는 사람이
내부에 있는 건 아닌지부터 점검한다.
가장 어렵고 복잡한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나’다.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린 채 산다는 건
슬픈 일이다.
죽을 때까지도 내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모든 여정은 결국 자신의 내적인 길에 이르기 위함이다. 나를 아는 것 외에 나머지는 부차적인 일에 불과하다.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자기 자신인 채로 죽음을 맞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이다.
이번 생에서 우리의 과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자신에게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문제와 갈등을 만나면
그 앞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시련과 고통의 크기보다
‘나’라는 존재의 크기가
훨씬 더 크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