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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을 8년 만에 처음 먹어보니

by 박가을


빵빠레를 8년 만에 처음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몇 년 동안 끊은 상태였다.


장이 워낙 약하기 때문에

여전히 음식을 절제한다.


그러다 보니 맛있는 걸 거의 먹지 못하거나

아주 가끔 먹는다.


얼마 전 엄마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발길이 멈췄다.

빵빠레 바닐라 맛 2개를 카트에 담았다.


장바구니를 트렁크에 넣었다.

출발하기 전, 엄마와 차 안에서 빵빠레를

쌀 튀밥에 찍어 먹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아이스크림과

톡톡 터지는 튀밥.


엄마랑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내

“맛있다. 그치? 행복하다.”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어렸을 때 나의 겨울은 행복했다.

눈이 펑펑 내리면 집 안으로 파고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마당 평상 위에 5cm 쌓인 눈은 솜사탕 같았다.


뜨끈뜨끈한 온돌방,

갈색 둥근 쟁반에 가득 담긴 귤,

두툼하고 포근한 노랑 이불,

가족들과 부대끼며 나누는 대화,

동생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

단지 그뿐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에 있지 않다.

일상 속 자잘한 것들에서 온다.


먹고, 일하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오늘 하루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온전한 행복을 실감한다.


현재 내 감정의 디폴트값은 ‘행복’이다.

원래 나는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행복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다.

행복은 먼 미래에 있다고 믿었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무엇이 되거나

어떤 걸 가져야 행복할 거라고 착각했다.


또 행복은 지속적인 감정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행운이라고 여겼다.


알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행복이란 ‘지금 당장 자주 오래’ 맛볼 수 있는

감정임을 체득했다.


물론 사람인지라 항상 좋을 순 없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감정의 비율을 보면

불행보다 행복이 압도적으로 높다.


예전 내 인생은 불행이라는 케이크 위에

행복이라는 딸기가 몇 개 얹혀있었다.


지금은 행복이라는 케이크 위에

불행이라는 체리가 두어 개만 놓여 있다.


다음은 새뮤얼 존슨의 책 <라셀라스>에서

기억남는 구절이다.


“인간은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이란

이 세상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임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

행복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도 언젠가는 그런 행복을 얻으리라고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요.”



대단한 행복을 한 번에 겪는 일보다,

조그마한 행복을 여러 번 마주했을 때

더 큰 기쁨과 만족을 느꼈다.


과거 직장 다닐 때, 옆에 있는 상사에게

말랑카우 사탕 하나를 슬쩍 건넸다.


상사는 미소 지으며 사탕을 받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상했던 잘 차려진 뷔페 음식도 좋지만,

예상치 못한 사탕 하나가 더 기분 좋더라.”


피아노 악보를 펼치니 수많은 음표가 보인다.

인생의 노래는 이 중에서 몇 개의 음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따뜻한 책 한 권,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개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에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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