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에게 인간관계와 관련해서
고민과 하소연을 털어놓은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구체적인 사연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키워드를 하나 발견했다.
‘잔소리’다.
즉 자신이 상대를(혹은 상대가 자신을)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타인의 과제를
함부로 침범하거나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책<미움받을 용기>의 저자는 주장한다.
제일 먼저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명하게 분리해야 한다.
경계선이 흐릿하면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상대의 과제인지 헷갈린다.
타인의 과제를 내 안으로 끌고 오지 않는다.
타인의 공간에 내 발을 들여놓으면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나는 대인관계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상대의 영역까지 침입한 건 아닌지’부터 점검한다.
그러면 상대의 과제인데 내 과제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 사람에 대한 고민이 심플하게 해결된다.
또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누군가 지나치게 내 과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아차릴수록,
나도 타인의 과제에 섣불리 개입한 건 아닌지
인식할수록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동생을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선을 넘어
간섭하고 잔소리했던 적이 있다.
내 마음과 달리 서로 오해하거나
사이만 멀어짐을 느꼈다.
동생 입장보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었음을 반성했다.
돌아보니 동생은 이미 알아서 잘하고 있었고
크게 부족한 점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바꾸겠다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다.
서로의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다.
공자가 말한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상대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중요하다.
가족처럼 가깝고 친해졌다는 이유로
상대의 사적인 영역을 마구 넘어오려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더 의식적으로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단호함은 유익하다.
너와 나라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고,
한쪽이 상대를 지배하여 조언자 역할만 하면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없다.
한쪽만 컨트롤 할 수 있는 관계,
즉 상대방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하는 관계는 결국 깨진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까워지면 멀어지고 싶고,
멀어지면 가까워지고 싶은’ 심리가 있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의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선을 지키고
존중하기 위해 적절한 거리감을 확보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고사성어를 좋아한다.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아닌
적당한 위치에서 관계를 균형 있게 지켜간다.
무엇이든 한 발짝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가까이에서만 보다 보면
오히려 그 사람의 본질 중
보지 못하는 부분도 생긴다.
산뜻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약간의 그리움과 아쉬움도 여백으로 남겨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멀어질 줄 아는 느슨함과
좋아하기 때문에 가까워지는 촘촘함,
둘 다 중하다.
쇼펜하우어는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라고 말한다.
우주 역시 적당한 거리 두기를 통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룬다.
태양과 지구와 달은 공전과 자전을 반복하며
서로 방해하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키면서 동시에 자기다움도
잃지 않는 완전한 관계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차피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내가 할 일은 상대를 믿는 것밖에 없다.
내 믿음에 대한 타인의 응답은 그 사람의 과제다.
‘아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잘하고 있어, 충분해’라는 마인드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만 바라본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내 마음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준 만큼 되돌아올 거라는 기대감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무한정 믿어줄 수 있는
마음 하나!
이것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더 빠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