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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시작했던 일

by 박가을



“아침에 책 읽으니까 행복해.

요즘 우울했는데 싹 없어졌어.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이유 없이 슬펐거든.

이젠 그렇지 않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내 옆에서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 읽는 루틴을 실천하신다.


어제저녁에 이렇게 얘기하셨다.


“빨리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일어나서 독서하고 싶어.

아침에 책 읽으면 기분이 좋아.”


9년 동안 매일 독서하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엄마도 똑같이 경험했다는 사실에

놀랍고 기뻤다.


철학자 몽테스키외는

“나는 재산도 명예도 다 가졌으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독서를 통하여 얻었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읽는 첫 번째 이유는

‘책 읽는 시간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위로나 감동을

크게 받아 울었던 적이 있다.


읽고 난 책이 좋아서

한참 끌어안기도 했다.


책을 읽고 싶어서

내일이 빨리 오길 바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든 날도 많았다.


책과 하나가 되어 온 마음으로

공감하고 희열을 느끼는 과정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잊지 못할 인상 깊은 내용을 만나면

책을 덮고 눈을 감아

벅차오르는 감정을 만끽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보자마자 외웠다.


책 속의 지혜와 통찰을 일상에 적용해

효과를 여러 번 보았다.


우리 집에 책만 가득한 방이 따로 있다.

그곳에 있으면

무한한 충만감이 밀려온다.


곳간에 양식이 채워진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하다.


사라지고 싶을 만큼 나 자신이 싫어서,

무너진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나에게 책은 단순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읽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


논어 학이편 첫 문장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학이시습지불역열호’가

나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공자는 ‘배움의 목적은 행복’임을

강조했다.


학문의 목적은 부귀영화나 권력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에 있다.


독서가 당장 나에게 직접적인 성과와

수익을 가져다주진 않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내 인생에 안겨주었다고 확신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이

삶 전체를 쓸모 있게 만든다’라는

모순 같은 진리를 체험했다.


동생 집에 갔을 때 진짜 식물 화분과

가짜 식물 화분이 같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진짜 화분에는

시든 이파리가 떨어져 있고,

작은 벌레들이 보였다.


화분 근처에는 물을 주다 밑으로

새어 나온 물줄기 얼룩과 흙먼지도

흩어져 있었다.


이와 반대로 가짜 식물 화분 곁은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완벽하다 보니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쓸모없는 요소들의 존재가

‘진짜로 살아 있음’의 증거가 아닐까 싶었다.


책은 내 존재와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다.


책과 함께 울고 웃고 배우고 성장하면서

인생은 점점 깊어지고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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