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책<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에서
읽었던 한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책에 나왔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미국의 어떤 사업가가 멕시코 해안가
작은 마을의 부두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한 어부를 만났다.
미국인은 어부에게 물고기 잡고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었다.
"늦게까지 자다가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이랑 놀기도 하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합니다.
저녁마다 동네에 산책을 나갔다가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기타도 치고요.
하루 종일 바쁘게 살죠."
어부의 말을 듣고 미국인은 이렇게 권했다.
"지금보다 더 시간을 들여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물고기를 판 돈으로 큰 배를 몇 척 사세요.
결국 선단을 갖게 되겠지요.
또한 잡은 물고기를 중간 상인에게 팔지 말고
가공업자에게 직접 팔면 통조림 공장까지
열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에서 번창하는
당신의 기업을 운영하는 거죠.
그러면 당신은 아주 부자가 될 겁니다."
그러자 멕시코 어부가 물었다.
"그 모든 일을 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15년에서 20년쯤 걸리겠죠."
"그런데 그 다음엔 뭐가 있죠?“
멕시코 어부의 물음에 미국인은
흥분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땐 은퇴해야겠죠.
조그만 어촌마을로 옮겨가서
늦게까지 자다가 물고기도 좀 잡고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밤에는 마을까지 산책을 나갈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며
기타도 칠 수 있습니다.” ]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진정 행복한 삶’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일평생 어떻게 써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
삶은 곧 시간이다.
시간은 생명과도 같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듯이
내 존재는 시간을 만나
하나의 일생을 부여받았다.
시간이 사라지면 나의 존재도 사라진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인간이 쓸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이다.
과거에 나는 미래의 막연한 목표만을 좇느라
현재의 시간을 소홀히 다루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고,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할까?’라고 자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질까 봐 바쁘게 보냈던
지난 시간들은 결국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다음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
시간에도 죽은 시간이 있고,
살아있는 시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썼는가이다.
모든 사람이 다 시간을 갖고 있지만,
시간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지만
서로 다른 걸 쌓으면서 살아간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각자만의 궤적을 따른다.
나는 내 삶의 시간 위에 무엇을 쌓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가슴으로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죽은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닐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정신없이 지낼수록
대신 전혀 다른 걸 아끼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은 시간 안에 갇혀 있지만
시간보다 인간이 훨씬 더 크고 높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아를 잊을 만큼 현재에 몰입하다 보면
시간에서 벗어나 내가 시간보다 더 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의 주인은 시간에 끌려다니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정확하게 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마음껏 쓴다.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사람만이
시간의 소유자다.
자신의 시간을 자기가 지배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시간을 지배하려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면서도
시간이 무한히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시간은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조건이다.
시간도 인간의 생명 속에서 실존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드러난다.
매일매일 아침과 저녁이 오고 가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지나는 것은
시간이 허락해 준 범위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시간이 다하면 우리는 더 이상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없고,
여름의 바람을 느낄 수 없다.
아침의 해와 저녁의 노을도 보지 못한다.
어렸을 때 종이 밑에 동전을 깔고
연필로 마구 칠했던 기억이 있다.
동전이 시간이고 종이가 삶이라고 비유해 본다.
정성껏 칠하기 전에는 삶 밑에 있는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는 동안 의미 있게 보낸 시간은
우리가 죽었을 때 ‘나’의 영혼과 함께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무가치하게 낭비한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종착점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한 직선에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엉켜 있다.
이 셋은 각각 따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똑같은 하나다.
미래 어딘가 저 멀리에 있을 것 같은
희미한 행복을 현재로 끌어와
또렷한 행복으로 색칠하자.
우리는 현재 속에서 비로소 존재한다.
지금 이 시간을 나의 내면으로 끌어들일 때,
시간의 흐름을 온 감각으로 느낄 때,
진정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금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