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1. 서문
아 피아체레(a piacere)는 필자가 대학 신입생 때 수강했던 철학 교양 강의에서 과제로 제출한 수필이다. 이에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형식을 평소와 달리했다. 과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을 수필 형태의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본문은 원문이다. 다시 읽어보니 문장이 꽤 날것이라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추측건대 최근에 쓴 글도 일 년 후에 다시 읽으면 부족한 점들이 보일 테다. 그러나 만 20세의 미숙하고 신선한 느낌을 훼손하는 것 같아 수정하지 않았다. 브런치에 게시하는 20번째 글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숫자 '20'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보고서 발표 시 사용했던 슬라이드를 본문 뒤에 첨부했다.
2. 본문
초등학생 시절 사귀던 한 친구가 물고기를 키웠다. 구피라는 종의 열대어였다. 그 친구에게 가끔 구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구피는 번식시키기 쉽지만 사육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부터 갓 태어난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책에 나오는 모든 개념의 밑에 정의가 적혀 있어서 좋았다. 공식은 사람과 다르게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았다. 그리고 나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정의하고 싶어 했다. 좋아하니 잘하게 됐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이과생이 됐다. 대한민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목표로 할 대학 전공을 정해야 했다. 기사에는 AI가 대체할 직업 목록이 나열됐고, ‘실업자’와 ‘증가’는 만년 짝꿍인 어휘였다. 아무도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미래에 직업을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취업률이 좋다는 컴퓨터공학과를 목표로 공부했다.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코딩 동아리를 만들고, 자격이 되는 대회와 특강에 전부 참가했다. 담임선생님께 성실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성실함은 두려움이 낳은 것이었다. 두려움은 막 출산을 마친 암컷 구피처럼 성실함을 마구 잡아먹었다. 나는 처음 구피를 키우는 사람처럼 두려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입시요강은 밥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읽어놓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대가였다. 어느새 텅 빈 어항처럼 나에게는 무기력만이 남아 있었다. 그 좋아하던 수학이 역겹게 느껴져 문제집을 쳐다보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였다.
나는 몸이 약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건강은 더 악화됐다. 고등학교 3학년에는 입시를 중단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2학년 겨울 방학 내내 애써 찾은, 정말로 가고 싶던 학과와 갖고 싶던 직업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도이신 부모님을 따라 모태에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매주 일요일 아침, 찬양을 부르고 설교를 들었다. 한때 청년부 임원을 맡았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목사님께 신실한 학생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수록 기독교의 모순적인 면들이 보였다. 평생 믿어왔던 진리에 의심이 들었고, 의심은 거부감이 되었다. 그래서 성인이 될 즈음부터 교회로 가는 발걸음을 끊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성경에 기반한 유신론적 관점에서 종교와 분리된 관점으로 옮겨졌다. 세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은 나 자신에 대한 해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크리스찬이 아닌 나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피구부였다. 피구에서는 공을 피하다 선을 넘으면 아웃이었다. 감독님은 경기 중에 절대 공을 등지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책에 나오는 모든 개념의 밑에 정의가 적혀 있어서 좋았다. 공식은 사람과 다르게 어디서나 한결같았다. 그리고 나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정의하고 싶어 했다. 스스로가 내린 정의에 어긋나는 스스로의 생각과 언행을 오류로 치부했다. 운동장 모래 바닥에 분필로 그은 코트처럼 여기까지만이 나라고 선을 그어놨었다. 그 선을 넘은 나는 질책의 대상이었다. 아끼던 것들을 등지며 날아오는 공과 같은 무언가를 피해왔다. 그 과정에서 종종 선이 밟혀 뭉개졌고, 분명하지 않은 선을 참지 못해 분필을 찾으려고 애썼다. 오만이었다.
나는 음악을 사랑했다. 그래서 작곡과에 가고 싶었고, 음반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잠깐이지만 클래식 작곡과 입시를 준비했다. 두세 마디의 모티브가 주어지면 화성학적 규칙을 따르면서 다른 수험생들과 같지 않게 발전시켜야 했다. 불협화음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도 배웠다.
나는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리듯, 내가 삶의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나를 정의 내릴 수 없고,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나를 정의하고 불변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무서운 오만이었다. 아픈 몸으로 혼자 누워 있어야 했던 시간들은 이러한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개성에 대해서도 오해를 했다. 내가 바라는 대로 그려놓은 나만이 나는 아니었다. 기분이 좋을 때 한 말도, 미숙함에서 비롯된 행동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튀어나온 생각도 나를 이룬다. 느리고 정적인 나도, 강하고 활발한 나도 둘 다 나의 모습이다. 개성을 가지려면 나다워야 하고, 선 밖의 나까지 온전히 받아 들여야 나다울 수 있을 듯하다. 불협화음은 악곡을 아름답게 만들고 나를 개성적으로 만든다.
음악 용어 중에 ‘아 피아체레(a piacere)’라는 용어가 있다. 악보에서, 마음대로 또는 임의로 연주하라는 뜻이다. 보수적이기만 한 줄 알았던 클래식 음악도 때때로 비정형성을 수용한다. 이제 어떠한 종류의 내 생각과 언행을 전부 그대로 인정해야겠다.
3. 발문
이 글은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나'를 인지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나'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과정은 인류 역사가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던 시기의 이념적 붕괴 및 재건설과 닮았다. 또한 한국 교육 및 입시 구조 속에서 학생들이 겪는 고충도 나타난다.
누군가는 가져봤음을 자랑하지만, 나는 잃어봤음을 자랑한다.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다 보면 어디까지가 나였고, 어디까지가 나인지를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 혼란은 내가 모든 나를 받아들이도록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