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감사하고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25. 10. 8. 수요일 D+10

by 흩날림문고




여행 내내 비가 내렸는데.

분명 그랬는데.


허탈하게도,

서울로 올라가는 날,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하늘은 맑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그런 걸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쳐 지나가는 마음들과 싸운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수없이 감사를 되네이다가도,

또다시 가라앉고 만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나는 두려움을 발견했다.

끝나가는 연휴의 끝이 두려웠다.


연휴가 끝나면 새로운 보직으로 이동하는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나,

그 시선의 무게를, 떠도는 말들을, 얽힌 감정들을,

과연 감당할 힘이 있나,

덜컥 겁이 났다.


그러자 삶의 여정이 지리하게 느껴졌다.

서울의 삶.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한 광경.

닫혀있는 사람들의 문.

거대한 바위 앞에 선 달걀.

목표를 잃어버린 느낌.

소설은 끝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어쩌면 내 인생도,

이번의 여행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온 세계를 누비며 글을 쓰고 창조하고자 했던,

나의 치기 어린 꿈이 한낱 망상으로 느껴진 것은,

이번 여행의 실패 때문이었을까,

연휴가 끝나가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엄마가 갑자기 내 글을 보여달라고 했다.

생일 선물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겠으니,

글을 보여달라고. 제발.


나는 연재 중이던 글 중에서,

남자친구에 대해 적은 글 한편을 건넸다.


엄마는 읽는 내내 웃다, 감탄하다, 몰입했다.

너 꼭 작가 같다.


그 말이 어쩐지 들뜨게 했다.

나를 작가로 불러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내가 소설을 완성하지 않아도,

나의 삶을 풀어놓은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작가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감사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모든 것이 있었다.

그런 하루였다.




엄마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실한 보름달이 하늘에 걸렸다.


엄마는 말했다.

너랑 남편이랑 이렇게 살면 좋겠다.

함께 같이 장보고 이야기하면.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다던 내게,

세상을 누비며 살라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내가 외동이라,

하나뿐이라 미안했다.

살가운 딸이 아님에 미안했고,

꿈꾸는 딸이라 미안했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음에도,

엄마의 옆에 있겠다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다만,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함께 조잘거리며 장을 보고,

손을 잡고 집에 걸어가는 이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