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직업격차
A는 비교적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닌다.(또는 공공영역에서 일을 한다고 하자)
코로나 이후에 잠깐 자가격리가 되기도 했으나 문제없이 일을 하고 있다. 때로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오히려 출퇴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서 은근히 재택근무를 기다릴 때도 많다. 받는 보수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B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그다지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던 회사는 코로나 초기부터 위기를 맞았고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조금씩 감원을 했다. B 역시 결국 버티지 못했고 회사를 나와야 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갈 곳을 알아보던 중 작은 회사에 재취업을 했으나 많지 않던 보수조차 더 떨어지고 말았다.
C는 자영업자다. 여행사 대리점을 운영했으나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차마 7~8년을 해오던 일을 포기할 수 없어 간신히 버티다 결국 폐업했다. 그러나 고용보험료를 납입하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고, 당장 수입이 될 것이 없어 택배와 대리를 겸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나이에 일은 잘 익숙해지지 않는데 앞으로도 한동안은 딱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가 발발한지 1년 반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들의 삶은 확연히 달라진 모양새가 됐다.
누군가는 이 와중에도 투자에 성공해 부자가 됐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삶이 됐다. 그런데 또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 온 것 같은데 ‘벼락거지’가 됐다. 그들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큰 차이가 벌어진 것일까?
위의 예시에서 A는 일종의 도약의 기회가 된 것이 코로나다. B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생각보다 빠른 경력의 하강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C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인데 실업급여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셈이다.
코로나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다. 적어도 시작 전엔 그랬다. 영화나 TV 속에서 보던 것이 현실화 될 줄 누가 알았겠나?(앞으로 나는 영화적 상상력을 존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코로나는 이미 수많은 사회현상의 변화를 만들어 놓았다.
그중에 내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직업의 격차’다.
아무래도 직업이 커리어 컨설턴트라는 직업이다보니 그렇겠지만, 산업간 격차는 물론, 같은 직업 내에서도 그 격차는 얼마나 그 상황을 잘 수용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짐을 지난 기간들을 통해 배웠다.
‘만약 내가 해외여행업 종사자였으면, 혹은 식당 주인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별로 대안이 없었다. 일부 대안모델을 탐색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음식배달’로의 전환 정도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원래 정작 수렁에 빠진 이는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 위기는 정작 당사자의 시야를 좁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어렴풋한 생각이 드는 것은 하나다. ‘사회적 연대’의 힘이다.
개인이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물론 이것에 토를 다실 분들도 있겠지만 조금만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확연히 세상에서 뒤처지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는 사회의 책임일 수도 있다. 이럴 때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은 어려운 삶에 처한 이들에게 좀 더 관대한 정책을 용인하고, 한편으로는 일상의 작은 노력이라도(가까운 가게는 전화번호라도 따서 직접 연락하는 수준의 노력)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이상적일까? 너무 팍팍한 현실이기에 이상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지는 요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