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한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이웃의 한 남자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물었고, 돈이 궁했던 남자는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라고 답했다.
그 말에 소녀는 부자를 찾아가서 돈이 많으면 행복한지를 물었지만, 늘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건강한 사람이 제일 행복한 거란다.”라는 답을 주었다.
다음에 소녀가 찾아간 이는 마을에서 가장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몸은 튼튼해도 혼자 살며 자주 외로웠던 그는 “행복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오는 거란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소녀가 찾아간 이는 아이들을 많이 둔 한 여인이었다. 소녀는 가족이 많으면 행복한지를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돌봐야 할 가족이 너무 많아 나는 자유시간이 너무 없어 불행하다”며 하소연했다.
결국 소녀는 행복에 대해 ‘행복이란 자신에게 없는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지만 매우 날카롭게 지적한 이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봤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어제는 모처럼 햇빛이 좋아 산책을 나갔다. 이른 봄 평일 오후 2시에 즐기는 산책...
그러다 7년 전 쯤 내가 첫 독립을 선언하고 퇴사한 후 산책을 나섰던 때가 떠올랐다. 마침 같은 장소였다.
지금도 그때의 낯선 감정을 기억한다. 남들 다 일할 때 혼자 햇빛을 쬐며 걸어다니는 신기한 경험이라니...묘하게도 불안했고, 낯설고, 한편으로는 기분 좋은 애매한 느낌이었다.
‘대한민국의 40대 가장이 이런 사치를 누려도 되나?’란 마음, 약간의 죄책감마저 스며 있는 그 기분은 오래 기억이 되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가만히 그 길을 걷다 보니, ‘마치 당연한 듯, 무심하게’ 걷고 있는 나를 보게 됐다. 생각해보면 여전히 누군가에겐 꿈같은 ‘평일 한낮의 산책’이 왜 그새 내게 ‘당연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고 말았을까? 첫날의 감사한 마음은커녕 무언지 모를 불만이 스멀스멀 온몸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스스로 ‘내가 가진 감사한 것들’을 망각하며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이란 존재는 잘 잊는다. 자신이 가진 것은 보이지 않고 늘 부족하거나 없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아마도 생존을 위한 인간 진화(그래야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으니)의 산물이었겠지만 그것은 삶의 기쁨을 스스로 갉아먹는 태도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공기, 가족, 오늘 맞이한 새로운 하루 같은, 정말로 소중한 것들에 대해 감사해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자신이 가진 위치, 돈(그게 얼마가 됐건), 오늘의 일거리(내 삶을 위한 돈을 벌게 해주는 일임에도), 또는 내가 가진 그 많은 다양한 물건들(때로는 내가 왜 샀는지도 모를 것들도 있지만)에 대해서도 감사해 하지 않는다.
냉정히 그것들이 없다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결핍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며 감사해 하지 않는 것일까?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울하던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쁜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만 열심히 찾아낸 셈이다.
‘일상의 감사함’을 잊을 때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지옥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