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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생을 연 한 마디

직업의 이면

두 번째 인생을 연 한 마디     


“죄송하지만 저희가 생각한 연령대가 아닌데요. 좀 더 젊은 분을 찾고 있어서...”
“그러시군요... 혹시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 이력서라도 한 번만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전화를 통해 이 말을 전한 나는 꽤 절박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고, 그 일만이 당시 내겐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화를 받았던 담당자분은 마음이 약하셨던 듯 내게 “그러면 이력서 한번 보내 보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다)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2007년 2월의 어느 날,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잘 다니던 첫 직장을 나온 이후 엄청나게 방황을 했다. 결혼 후에도 이어진 그 방황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망만으로 시작했던 프랜차이즈 음식점까지 연결됐지만, 채 6개월도 지나기 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배운 것은 정작 음식업이 내 성향과 너무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의 변화, 성장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늘 배움과 그것의 활용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었는데, 특정한 공간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과정이나 음식을 만들고 개선하는 일들은 내게 그야말로 돈만을 벌기 위한 고역이 되고 말았다.     


주인이 마음이 떠난 가게가 제대로 운영될 리 없었다. 신규 점포의 오픈빨이라는 이벤트가 끝나자 가게 매출은 움츠러들기 시작했고, 6개월도 안 되어 나는 희망도 없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일상을 보내야 했다.

결국 폐업이라는 결단을 내리기는 했으나 막 둘째를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려면 2교대 생산직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문제는 내가 손으로 하는 일, 특히나 똑같은 일의 반복적 작업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에게나 작은 씨앗이 기회가 된다

 

적지 않은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예전에 노동부 시절 잠시 마음을 두었던 직업상담업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급여는 간신히 월 100만 원을 넘기는 민간일자리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일만은 상대적으로 잘하리라는 묘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내 오랜 직업적 방황과 인간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 만든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나마 어렵게 지원한 대부분의 일자리에서도 30대 후반의 나는 번번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자영업을 꽤 오래 했다는 이유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눈에 띈 월 150만 원이라는 거금(?)의 모 기관 직업상담 일자리는 내게 잠시 희망을 줬으나 직접 걸어 본 전화에서 역시나 내 나이가 많다는 답변을 들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서기 아쉬워 이력서만이라도 한번 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것이다.  

   

며칠 뒤, 이메일로 회신이 왔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저희와 함께 하시지 못하게 됐습니다.’라는 탈락의 통보...큰 기대조차 없었음에도 나는 마음속 쓴 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아침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탈락 통보를 했던 그 기관에서 ‘오늘 당장 출근이 가능할지‘ 문의가 온 것이었다. 아마도 출근을 하기로 했던 분이 출근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는데 나는 기꺼이 ’바로 출근이 가능함‘을 알렸다.     


그렇게 다시 내 인생은 시작됐다. 직업상담이란 영역에서. 그리고 벌써 만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 분야에서 1인 기업을 만들어, 만 7년이 넘게 일을 하고 있다. 살아남았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가끔 과거를 돌아보면 내 인생의 초기 방황을 끝낸 2라운드의 시작은 아마도 그 한 마디였던 것 같다.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만들어 낸 그 한 마디,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 이력서라도 한 번만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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