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하여
1. 딸 아이와 감정적인 다툼이 생겼다. 감정적인 다툼이란 누가 옳고 그런가에 대한 시시비비가 별 의미 없는, 이미 감정적인 문제로 전환되어 버린 상황의 다툼을 의미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더 다툼의 빌미만 되는....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한 마디로 나는 격퇴당했다.
“아빠 말이 옳아. 그런데 난 지금 아빠 말이 듣기 싫어!”
2. 아내와 경제적인 문제로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역시나 감정적인 다툼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내와 생활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같이 논의를 하고 싶었는데 아내는 불편해 하는 기색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아내는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여러 가지 다른 회사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상황이었음을...경제적 문제에 대한 대화가 싫은 것이 아니라 또 타이밍이 나빴을 뿐이다.
3. 살면서 우리는 숱한 다툼을 한다.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 다툼은 많은 경우 옳고 그름이 별 의미가 없다. 우리는 아주 냉철한 척하지만 대개 감정에 지배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은 자주 진실을 보여주지만, 때로 그것만큼 의심스러운 것도 없다. 감정은 때때로 스스로 자신마저 속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는 그에 지배되기 쉽게 태어났다. 갈등해결이란 결국 이런 감정적 매듭을 푸는 작업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했지만 회사에서도 별로 다를 것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상사와 갈등이 심했었다.
문제의 핵심은 그 친구가 ‘상사의 의도를 알면서도 해주기 싫은 감정 상태’였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기에는 이미 그 마음에 패인 상처가 너무 깊었다.
이쯤 되면 많은 경우 ‘시간’외엔 기댈 것이 별로 없다.
‘말로써 해결되는’ 경우란 ‘말이 통하는 관계’라야 가능하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애초에 어지간한 대화로는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없다. 누군가 진실한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4. 다행히도 ‘말이 통하는 관계’라면 어떻게 될까? 이때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관계였어도 감정적으로 날이 서 있는 상태에서는 논리적인 설득 따위가 먹히지 않는다. 차라리 그럴 때는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설득이나 대화는 그 ‘감정의 날’이 원만해졌을 때나 가능하다.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대화는 시작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