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이야기
어느 날은 삶이 참 좌절스러울 때가 있다. 세상이 끝난 것 같기도 하고, 무척이나 힘든 상황에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면 다음날 뭐가 달라질까 싶은데...우습게도 다음날은 또 의외의 힘이 나고 삶은 또 그렇게 한 고비를 넘어가곤 한다.
‘감정에 솔직해지라’는 얘기가 있다. 나쁜 말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 말이 ‘무조건 옳다’라고 믿는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보니 ‘내 감정도 나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감정은 우리 속에서 일종의 증폭현상을 겪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증상이 ‘화의 폭발’이다.
화를 내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화를 내다보면, 왠지 모르게 더 화를 상승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화를 내는 중에 더 화가 나는 상태’랄까?
누군가에게 폭발을 한 번쯤 시키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할 것 같지만, 화를 낸 후 실제로 그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대부분 ‘아니올시다’였다.
화를 내고 속이 시원해지기는커녕, 대부분 후회를 하곤 했다. 문제는 해결된 적이 거의 없고 상처는 더 깊어졌으며 내 입장은 대개 더 난처해지곤 했다.
화를 낸다는 건 순간적으로 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기름을 퍼붓는 행위에 가깝다. 그때는 나는 없고 화만 남게 된다. 화의 핵심은 ‘통제 불가능성’에 있다. 통제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문제해결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다. 혹 상대를 겁을 주거나 생각을 바꾸도록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 화의 대상이 경우를 생각해 보시라. 겁이 나던가? 혹은 겁이 나면 상대 말대로 해주고 싶던가? 또는 생각이 바뀌던가?
천만의 말씀. 마주 화를 내던가, 잘해야 다시는 그 사람과 얘기하지 않거나 피해야겠다는 다짐 정도만 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화의 효력은 ‘주변의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뿐이다.
때로 무기력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혹은 세상이 끔찍해 보여도 너무 그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는 말자. 시간은 아주 우습게 인간의 감정을 희롱한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난 뒤에 자신을 보면, ‘도대체 왜 저러고 살았나?’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감정이 안 좋을 때 ‘오늘 내가 좀 상태가 안 좋구나. 시간이 좀 필요하고, 마음과 몸의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겠구나’란 자각을 할 수 있다면, 안 그래도 통제가 안 되는 이 세상에 더 후회할 일은 그나마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